지난 3일 일본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오랜 증시침체로 금융부문의 거품이 걷히면서 일본의 7대 증권사인 산요(三洋)증권이 도산,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
이러한 절박한 상황을 강건너 불처럼 느긋하게 구경할 수만은 없는 게 국내 증권업계의 현실이다.
국내에서 주식매매업무를 하고 있는 39개 증권사의 올 상반기(4∼9월) 영업성적표는 참담하다. 6개월간 3천6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작년 상반기의 2천5백25억원을 20% 이상 웃돌았다.
그나마 이 수치는 이들이 갖고 있는 주식 등 유가증권 평가손실을 대부분 30%밖에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100% 반영할 경우 적자폭은 무려 1조원을 웃돌게 된다.
92∼94년 연간 평균 5천억원 이상 흑자를 냈던 증권사들이 만신창이가 된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증권업계 스스로는 주식 위탁매매 수수료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을 첫번째로 꼽는다.
동원증권 김정태(金正泰)사장은 『위탁매매 수수료는 미국의 경우 전체수입의 15%, 일본은 30% 안팎에 그치는데 비해 우리는 60∼70%에 이른다』며 한국의 증권업계를 「천수답(天水畓)」에 비유했다. 즉 비가 오지 않으면 쩍쩍 갈라지고 마는 천수답처럼 증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도산하는 증권사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진단.
한편 대유증권의 김경신(金鏡信)이사는 영업직원들을 쥐어짜 주식약정고를 올리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최고경영자들의 낡은 경영관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런 방식으로는 내년말 증권산업이 완전 개방됐을 때 더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설명.
증권업계는 그동안 위탁수수료 담합과 철통같은 진입장벽 아래 국제적 경쟁력 키우기를 등한시해왔다.
9월부터 수수료 상한선이 없어졌지만 모든 증권사들이 「수수료 인하〓수지 악화」라는데 의견을 같이 해 아직까지 0.5%로 묶어두고 있다. 한 증권사 사장은 『수수료 인하계획을 세웠으나 동업계의 거센 항의를 받고 백지화했다』고 털어놓았다.
정부는 지난 2월 자본금 1백억원짜리 소형 증권사 신설 등 증권산업 진입규제 완화책을 발표했으나 기존 증권사 사장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반대로비를 하자 99년 이후로 연기시켰다.
그러나 담합과 보호막이 우리 증권사들을 지켜주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2,3년 전만 해도 일본 증권시장의 절반 이상을 움직였던 노무라(野村) 등 일본 4대 증권사마저도 구미(歐美) 증권사들과의 경쟁에서 급속하게 힘을 잃어가는 판이다.
증권연구원 최운열(崔運烈)원장은 『기득권 아래 안주해온 국내 증권사들이 선진 외국 금융기관들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전문화 특화전략과 합병을 통한 종합 투자은행으로의 변신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험업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33개 생명보험사의 손익 합계는 93사업연도(93년4월∼94년3월) 1천2백82억원 흑자에서 94년 3천9백25억원 손실로 돌아선 뒤 95,96년에도 각각 8천5백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심지어 8월에는 33개 생보사 중 17개사가 보험금 지급여력이 부족해 재정경제원으로부터 증자 명령을 받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사업규모 제한 등의 제재조치를 받기까지 했다.
보험사들이 이처럼 집단부실화한 주요 원인은 88년 생보사들이 무더기로 설립되면서 지나친 과당경쟁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이 부실덩어리가 된 가운데 경쟁은 은행과 보험간, 생명보험과 손해보험간 업무영역이 하나둘씩 허물어지면서 양적으로는 물론이고 질적으로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더구나 내년에는 부실 생보사의 인수 합병을 조건으로 한 5대 재벌의 생보업 진출이 본격화하고 보험시장 자유화 일정이 마무리돼 경쟁이 최고조에 달할 전망.
금융연구원은 『재벌그룹들의 시장 참여가 본격화하면 부실 생보사에 대한 인수합병(M&A) 등 보험업 구조조정이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생보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시장에 적합한 생보사의 수는 10∼15개에 불과하다』면서 『보험산업의 재편은 1,2개 회사에 그치지 않고 대대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경준·천광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