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11조 지원」 한국은행 딜레마

  • 입력 1997년 12월 13일 20시 42분


은행 증권 투자신탁회사 등 금융권에 무려 11조3천억원을 지원, 마비상태에 있던 금융시장을 회복시키려 하는 한국은행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 외국언론들은 한은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거액을 풀기로 하자 14일 일제히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약속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한은은 『시장을 마비된 상태로 방치해 대부분의 금융기관과 기업들을 일거에 도산시키는 것은 IMF의 뜻이 아니다』며 『정부가 최근 금융시장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IMF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IMF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데 한은의 고민이 있다. IMF의 기본입장은 돈을 빌려줄테니 우선 다급한 외국 빚을 갚고 초긴축과 함께 금융기관과 재벌그룹을 중심으로 시급히 구조조정을 하라는 것. 그러나 정부는 「모든 금융기관을 다 살리면서 헤쳐가겠다」는 것이어서 기본 방향이 다르다. 실제로 한은은 은행에 7조3천억원, 종금 증권 투신사에 모두 4조원을 공급하되 부실 건실여부를 따지지 않고 개별 금융기관에 곧바로 지원키로 했다. 정부와 한은은 『여러 군데 고장이 난 환자(한국경제)를 고친다고 한꺼번에 대수술을 해버리면 환자가 죽는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IMF지원에 참여한 외국에서 볼 때는 『돈 빌려줬더니 욕이나 하는 한국민이 이상하고 나아가 중앙은행은 본원통화(현재 20조원)의 절반을 웃도는 돈을 더 풀고 있으니 정말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특히 IMF는 △은행 구조조정은 당장에 하지 않는다는 임창열(林昌烈)부총리의 공표 △종합금융사를 9개에 이어 5개를 추가 업무정지하면서 선정기준이 투명하지 않은 점 등도 문제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 관계자들은 『빚받을 채권자(IMF)의 말과 반대로 가면서 돈도 더 빨리 주고 우리가 쓰는 방향을 용인해 달라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걱정했다. 〈윤희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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