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현 정부가 출범한 93년 2월부터 94년 12월까지 22개월간 외무장관으로 있었다. 재임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일 중의 하나가 93년 우루과이라운드(UR)의 타결이다. 그해 12월16일 우리나라 시간으로 자정 무렵, 스위스 제네바에서 1백17개국의 협상대표들이 적잖은 우여곡절 속에 7년여를 끌어온 협상의 타결을 선언했다.
▼ 창구분산 혼선만 야기
당시 정부는 UR 협상의 타결을 계기로 정부조직 개편작업을 시작했다. 개혁의 핵심은 행정 규제의 완화와 외환 및 자본시장의 자유화를 통해 ‘보호와 규제의 틀’을 ‘자율과 경쟁의 틀’로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또 ‘작고 강한 정부’를 만들고자 했다.
이에 따라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합쳐 재정경제원으로 만들고 상공부를 통상산업부로 이름을 고쳐 통상업무를 맡도록 했다. 그러나 재경원이 ‘작고 강한 정부’대신 ‘크고 비효율적인 정부’의 표본이 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재경원이 가진 문제점은 재경원장관 조차 인정하고 있으니 재론할 필요도 없다.
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통상교섭의 어려움 중의 많은 부분도 상공부를 통산부로 개편함으로써 생겼다고 봐야 한다. 당시 외무부는 UR협상을 계기로 통상교섭 창구 단일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외무부로 통합할 것을 건의했다. 외무부가 자체의 업무 확장을 위해 주장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개편이 국가이익에 가장 합당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상공부를 위시한 경제부처들은 이구동성으로 통상교섭 창구가 단일화되면 오히려 대외교섭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교섭창구의 분산을 주장했다. 그 결과 정부조직법상 통상관련 대외교섭은 외무부 업무로 규정해 놓고도 상공부를 통산부로 개칭하여 그 아래 통상무역실을 신설토록 했다. 이것이 지난 수년간 통상교섭 과정에서 혼선과 비능률을 야기하게 되었고 나아가 오늘날 우리 경제가 이처럼 어려움을 겪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지금 유례가 없는 국가경제의 어려움속에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정부 조직개편이 추진되고 있다. 이 논의를 몇 년 만에 다시 지켜보면서 한가지 진전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통상교섭 창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몇 년 전 외무부의 주장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교섭창구를 어느 부처로 단일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대외경제적 당면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비교적 쉽게 결론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향후 우리경제의 과제는 어떻게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세계화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통상의 진흥뿐만 아니라 해외시장 개척과 함께 외국인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 또 이러한 활동은 유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세계화 흐름 동참 기회
그러나 통산부에서 제안하고 있는 통상교섭처는 미국통상대표부(USTR)처럼 교섭기능만 가진 조직으로 해외공관을 지휘하여 시장을 개척하고 해외자원을 확보하거나 해외투자 유치활동을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외무부에 전반적인 대외교섭 기능을 둔 채 통상분야 교섭만 전담하는 기구를 또다시 신설하는 것은 인적 물적 자원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일의 난맥상을 가져올 우려도 있다. 캐나다 호주 벨기에 스웨덴 등을 포함한 세계의 여러나라들은 이미 오래 전에 외무부를 외교통상부로 개편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경제 통상 체제의 개편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경제 통상교섭 기능을 외교통상부로 통합하여 경제외교의 역량을 총집결하는 것이다.
한승주(고려대교수·전외무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