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勞使政)위원회는 ‘공동선언문’이라는 첫 작품을 만들어내며 상당한 산고(産苦)를 치렀다.
노사정이 20일 마련한 공동선언문은 각 경제주체가 고통분담의 실천의지를 대외적으로 밝힌 ‘선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당초 이 선언문은 해외투자자들을 겨냥한 ‘정치적’ 목적아래 준비됐다. 노사정 3자가 위원회를 발족하자마자 서둘러 선언문 작성에 들어간 것도 21일부터 시작되는 미국 뉴욕의 민간 금융기관과의 협상테이블에 이를 올려놓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화급한 목적 외에도 공동선언문은 향후 노사정간 협상의 기본방향과 일정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이날 채택된 공동선언문의 내용을 보면 전체적으로는 노측의 입장이 보다 많이 반영됐음이 두드러진다. 선언문에는 △실업대책 및 근로자생활안정대책 마련 △무분별한 해고와 부당노동행위 방지 △실업발생의 최소화 △경제위기에 편승한 산업현장의 불법행위 엄정 대처 등 곳곳에서 노측의 이익을 보호하는 대목이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반면 관심의 초점인 ‘고용조정(정리해고)의 법제화’ 문제는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로 명시적인 표현은 피해나갔다. 하지만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 채택한 의제들에 대해 2월 임시국회 일정을 감안해 조속히 일괄타결하겠다’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2월 임시국회에서의 처리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물론 노측은 이같은 합의가 정리해고제를 수용한 것은 아니며 향후 협상과정에서 반대입장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선을 그어놓았다. 사용자측도 그 정도의 표현으로는 정리해고제에 대한 노동계의 확실한 동의를 받아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측은 2월 임시국회에서 노동계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정리해고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자평한다.
이처럼 각자의 속셈이 판이하기 때문에 선언문의 표현을 둘러싸고 앞으로의 협상과정에서 ‘약속위반’ 시비와 함께 노사정간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타협의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어차피 99년 3월부터 시행하게 돼있는 정리해고제를 이번 기회에 요건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만들어 실리(實利)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정훈기자〉
노사정위원회의 한광옥(韓光玉)위원장과 박인상(朴仁相)한국노총위원장 배석범(裵錫範)민주노총위원장직무대행은 20일 밤 공동선언문에 합의한 뒤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추후 협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산고 끝에 공동선언문에 합의한 소감은….
(한위원장) “역사적인 날이다. 외국에 대해서도 노사정간의 과거가 청산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어떤 결론도 도출해 낼 수 있다는 의지와 행동을 보여준 것이다. 앞으로 할 일이 많다. 열심히 해나가겠다.”
(박위원장) “우리는 어떻게하면 노동조합원들을 해고의 위기에서 탈출시킬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 왔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부 정계 기업이 고통을 감내하는 가시적 조치를 보여야 앞으로의 협상도 잘될 것이다.”
(배위원장직대) “상당한 우려가 있었으나 외화유치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 공동선언문에 합의했다. 우리들의 주장은 변함이 없다. 정리해고에는 분명히 반대한다.”
―한위원장은 앞으로 어떻게 협상을 진행시켜 나갈 것인가.
“노사간의 거간 역할을 하겠다. 협상의 주체는 노와 사다.마음을 열어놓고 일을 진행시키겠다. 오늘은 너무들 피곤하다. 다음에 얘기하자.”
〈이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