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대기업이 엔고(高)에 따른 경기 호황으로 문어발식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리던 95년 일찌감치 구조조정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기저귀 제품을 생산하는 유한킴벌리 대전공장은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멕시코 콜롬비아 등에서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전세계 공장 중 품질 1위, 생산성 2위를 달린다.
95년 이전까지 시간당 1만2천개의 기저귀를 생산했던 이 공장이 같은 인력으로 시간당 2만4천8백개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미래에 대한 투자를 선택한 결과.
회사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근로자의 4분의1을 내보내 손쉽게 비용 부담을 덜 수 있었지만 감원을 하지 않고 3조 3교대로 돌아가던 공장을 4조 3교대로 바꿔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택했다.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일에 몰두한 근로자들의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안전사고는 눈에 띄게 줄었다. 결국 3년 뒤에는 생산성이 인원 감축 효과를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 수준까지 올랐다.
위기를 과감한 투자로 이겨낸 유한킴벌리의 자신감은 비효율을 배격하는 기업정신에서 나온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설립자 유일한(柳一韓)박사의 유언대로 유한킴벌리는 생산시설 외에 단 한평의 땅도 소유하지 않은 회사. 연간 매출액 4천억원에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춘 이 회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본사 건물도 임대해서 쓰고 있다.
말단 사원에서 최고경영자까지 오른 문국현(文國現·48)사장은 23평짜리 전세 아파트에 살면서 판공비를 한 푼도 쓰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기획실장 시절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기업 모토를 만들어 내기도 했던 그는 최근 임업연구원에 ‘제1의 물결’프로젝트를 의뢰했다.
‘제1의 물결’은 한국이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환경 친화적인 1차 산업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역이용해 부흥시키자는 취지.
미국이 후버댐을 건설, 대공황을 탈출했듯이 한국도 올해 예상되는 1백50만 실업자를 나무가꾸기 등 노동집약적인 1차 산업에 활용한다면 현재의 위기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 문사장의 IMF시대 경영전략이다.
〈이 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