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勞使政)위원회가 고통분담 실천의지를 담은 공동선언문에 합의한 것이 곧바로 밝은 협상전망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노사정위원회가 앞으로 다룰 의제의 방대함(10대과제 37개항)에 비추어 시간이 몹시 촉박하다. 위원회는 공동선언문에서 협상타결 시한을 못박지는 않았다.
그러나 ‘2월 국회의 일정을 감안해 조속히 일괄타결키로 한다’고 합의한 사실을 감안하면 늦어도 2월 임시국회 폐회 전에는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하지만 노사정위원회의 논의구조부터 ‘전문위원회→기초위원회→본위원회’라는 ‘3층구조’로 돼있어 협상은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물론 기업의 투명성 확보와 구조조정 등 정부측과 사용자측의 실천사항 중 일부는 이미 실행에 들어간 부분도 있다. 대기업의 상호지급보증 해소나 결합재무제표 도입 등도 비상경제대책위에서 2월 임시국회에서의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또 이번 노사정위원회의 의제 중 상당부분이 이미 96년 대통령자문기구인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에서 충분히 다뤄진 사안들이기 때문에 의외로 조기에 타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사정 3자의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만큼 새로운 협상이 시작된다기보다 서로의 의견차이를 조율하는 일만 남아있다는 점도 긍정적 전망을 갖게하는 대목이다.
노사정위원회는 효율적인 협상을 위해 우선 정부측이 각 의제에 대한 안을 내놓으면 노측과 사측이 각자 내부의견을 조율한 뒤 수정안을 내놓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실제 협상과정은 노사정 3자간 협상보다는 노―정간의 양자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위원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측 입장에서 볼 때 노사정위원회를 만든 의도가 노동계의 동의를 받아 고용조정(정리해고)과 근로자파견제도의 법제화를 성사시키겠다는 데 있는만큼 실질적인 협상의 무게중심은 김차기대통령측과 노측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계의 양보를 받아내는 게 주목적인만큼 사측의 발언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노동계 협상전략의 초점이 ‘이번 기회에 그동안의 숙원사항을 모두 따내겠다’는 데 맞춰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예컨대 노동계는 △공무원 교원 노조결성 △노조의 정치활동의 자유 △구속근로자의 석방 및 사면복권 △노조 및 노동단체의 재정자립 △경영권 참여 등을 관철하는 데 주력할 것이 분명하다.
반면 사측은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반드시 법제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노동계가 정리해고제를 수용하는 대신 법적요건 강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가장 경계한다. 99년 3월부터 시행키로 돼있는 정리해고제의 요건이 그렇지 않아도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보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요건 강화를 요구하고 나올 때는 차라리 의제에서 제외하겠다는 복안을 밝히고 나설 정도다.
김차기대통령측과 정부측은 가급적 협상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조정자’ 역할만 하겠다는 생각이다.
또 정부측 실천과제에 대해 충분한 성의를 보여 노사 양측이 모두 양보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차기대통령측은 일단 협상테이블에 앉은 노동계로부터 최소한 정리해고제에 대한 암묵적 동의는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같은 판단아래 김차기대통령측은 노동계의 숙원사항들을 상당부분 수용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김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