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의 재벌개혁 의지가 예상보다 단호하다. 기왕에 ‘수술메스’를 든 이상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겠다는 자세다.
김차기대통령과 자민련의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 박태준(朴泰俊)총재는 21일 정례회동에서 “대기업은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반드시 신속하고 강력하게 개혁을 단행해야 하며 과거처럼 흐지부지 돼서는 안된다”고 뜻을 모았다.
이 자리에서 김차기대통령은 특히 “누가 정치자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도 아닌데…”라며 강하게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박총재에게 비상경제대책위원회를 지도해 대기업의 개혁을 확실하게 실천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국민회의 지도위원회의에서도 현재 진행중인 재벌들의 구조조정이 미흡하다면서 기업간 사업교환(빅딜)과 기업주의 사재(私財)투자 등 더욱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했다.
김원길(金元吉)정책위의장은 “지금 발표되고 있는 구조조정계획은 우리가 제시한 가이드라인 정도”라며 “재벌소유주들은 국민과 노동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수준으로 과감한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차기대통령측이 ‘강력하고 신속한 개혁’을 밀고 나가는 것은 무엇보다 재벌들이 내놓는 개혁안을 ‘기대이하’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재벌들에 따라 일부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나 대체로 계열사 중 적자부분만 잘라내겠다는 정도라는 게 김차기대통령측의 평가다. 김차기대통령측이 바라는 재벌개혁 수준과 관련, 김의장은 “노동자를 달래고 국민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차기대통령측이 가장 주시하는 대목은 재벌총수가 사재를 내놓거나 수익성있는 유망업종을 과감히 버리는 등 진정한 개혁의지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 이는 갈 길이 먼 노사정(勞使政) 대타협, 특히 고용조정(정리해고제)을 노동계가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재벌들의 ‘선(先)고통분담’ 조치가 가시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차기대통령측은 결합재무제표 조기도입, 상호지급보증 금지 등 재벌측에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법제화하는 한편 개혁 가속을 위한 후속조치를 강구 중이다. 우선 기업의 자율개혁을 위한 인센티브정책을 실시, 금융지원시 조건을 부과하거나 관련 세제(稅制)를 개선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특히 박총재의 역할이 관심사다. 박총재는 이미 일부 재벌총수가 사재를 내놓는 데에 나름의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앞으로 업종전문화 등 산업전반의 구조조정을 위한 ‘거중조정자’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