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 로널드 레이건과 월터 먼데일후보는 ‘쇠고기는 어디에 있느냐’는 주제로 대논쟁을 벌였다.
“레이건이 추진했던 공급경제학에 따르면 과실(쇠고기로 상징)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별게 없지 않으냐”는 먼데일의 공격에서 시작된 이 논쟁에는 이름깨나 있는 경제학자와 연구소들이 대거 참여했다.
90년대 초 미국에 불황이 닥치자 이번에는 ‘무엇이 불황을 가져왔나’라는 주제를 놓고 대논전이 벌어졌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90년대 초 거품경기가 꺼질 때 경제학계는 치열한 논전을 벌여 거품이 빠질 때는 실물경제와 금융이 함께 가라앉는다는 이른바 ‘복합불황 이론’을 개발해냈다.
국내의 한 유력한 국책 경제연구소는 작년말 한국 외환위기와 관련해 대외신인도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신인도와 관련해서는 국제금융시장의 여론이 중요한 요인”이라며 해외언론의 보도추이를 소개하는데 그쳤다.
며칠 전 서울에서 열린 유력한 경제학회의 세미나도 사정은 비슷했다.
왜 한국이 갑자기 국가부도위기에 몰리게 됐으며 작년 8월과 10월에 주가와 환율이 왜 그리 급격히 움직였는지 등을 밝혀보려는 논문 한편 발표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한 논전이 벌어진 바도 없다.
하나의 이슈가 던져지면 곧 ‘토론의 장(場)’이 즐비하게 서 논박을 벌이는 선진국의 학문풍토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 소장 경제학자는 “한국에 그리 많은 경제학자들이 외환위기에 대해 왜 속시원한 설명 한번 없느냐”며 “한국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학문적 사대주의’풍조가 만연해 있다”고 통탄했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일찍이 학자의 기능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과 함께 ‘사회적 봉사’를 강조했다.
허승호<국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