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엿보기]「데킬라 현상」

  • 입력 1998년 1월 25일 19시 14분


‘데킬라’. 손등에 묻힌 소금을 안주삼아 마시는 멕시코산 독주(毒酒)의 이름이다. ‘데킬라 현상’이라는 경제용어가 있다. 94년말 멕시코가 외환위기의 벼랑끝에 몰리자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주변국들도 마치 멕시코산 데킬라에 취한 듯 같이 위기를 겪은데서 나온 말이다. 당시 브라질이나 칠레 등은 국제수지 등 경제여건이 외환위기를 치러야 할 만큼 취약하지 않았는데도 ‘모진 이웃 만나 날벼락 맞는’ 불행을 당한 것. 요즘 아시아의 외환위기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엿보인다. 지난해 7월 태국 바트화의 폭락에서 시작된 환율위기 태풍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를 차례로 쓰러뜨린데 이어 ‘경제 기초여건(펀더멘털)’이 좋다는 한국까지 강타했다. 이 태풍은 웃고 있을 줄 알았던 일본마저 비틀거리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아시아판 데킬라 현상’이었다. 이런 일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헤지펀드를 만지는 ‘큰손’들이 각국 경제여건의 미세한 차이를 알지 못하고 대충 ‘한묶음’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빚어진다. 예를 들어 뉴욕 월가의 펀드매니저는 바트화 폭락사태가 일어나면 “동남아가 위험하군. 이 지역에 대한 투자비중을 30%에서 20%로 즉시 줄여”라고 지시한다. 월가 매니저 밑에서 일하는 홍콩의 펀드매니저는 아시아 각국에서 10%만큼 돈을 빼낸다. 이에 따라 이 지역 전체에 달러가 말라붙고 외환위기가 닥친다. 동남아 금융위기가 들불처럼 번지자 전세계 펀드매니저들은 아시아라면 고개를 저으며 자금을 빼냈다. 이들은 다음 수렵지를 찾는 포수들처럼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데킬라 현상을 ‘인접효과’ ‘전염효과’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허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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