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은폐-축소-늑장보고…책임은 어디에

  • 입력 1998년 1월 26일 07시 40분


“금고열쇠를 받아 열어보니 그 속에는 빚문서만 쌓여 있었다.”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이 18일 ‘국민과의 TV대화’에서 현 경제상황을 비유해서 한 말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4일 감사원에 특감에서 △외환보유고 및 관리상황에 대한 보고시기와 은폐 축소 지연보고여부 △청와대 재정경제원 한국은행 등의 외환위기상황 인지과정 △청와대 재경원 등 상급기관에 대한 외환위기 보고시기 및 대응조치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금융연구원 등의 경고와 건의 시기 및 활용여부 조사 등에 중점을 둬 달라고 요구했다. 인수위는 또 안기부가 지난해 1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금융위기 관련 보고서의 존재 여부와 있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지, 또 김대통령에게 누가 언제 어떻게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보고했는지에 대해서도 규명해 줄 것을 당부했다. 감사원이 이미 재경원과 한은을 대상으로 외환위기관련 보고내용과 보고시점, 보고자 등에 대한 자료수집에 나선 것도 이같은 주문과 무관치 않다. IMF구제금융 신청이 결정된 지난해 11월 이후 한은은 “전부터 청와대와 재경원에 외환위기에 대해 건의했다”며 ‘발빼기 발언’을 해왔다. 그 때문인지 한은은 언제 누가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외환위기상황을 보고했는지를 알고자 하는 감사원의 자료요청에도 적극 협조하고 있다. 감사원은 재경원에 대해서는 한은이 보고한 내용이 어디까지 올라갔는지와 후속조치 일자 및 내용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또 재경원의 국(局)이나 과(課)에서 외환위기 상황을 자체분석, 경제부총리나 청와대 등에 보고한 일자 및 내용과 조치상황 등에 대해서도 자료제출을 요구했다. 감사원은 우선 재경원과 한은의 자료를 비교해 책임소재를 밝히고 외환위기에 대한 은폐 축소 지연보고가 있었는지를 밝히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경원은 임시국회개회와 외환대책수립,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자료협조 및 담당자의 전보 등을 이유로 아직 자료제출을 하지 않고 있다는게 감사원측의 설명이다. 문제는 최종적으로 보고를 받았을 청와대에 대한 특감. 감사원은 현행법상 독립기관이지만 대통령 직속기관이라는 점에서 사정(司正)대상으로 김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기는 불편한 입장이다. 23일 김대통령이 특감 수용방침을 밝히자 감사원은 24일 경제수석실을 감사대상기관에 공개적으로 올려놓는 등 적극적인 감사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김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조사계획이나 방침을 검토하거나 결정한 바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김대통령이나 김차기대통령측으로부터 아직 ‘방침’을 받지 못한 눈치다. 정가에서는 이번 특감에 대해 김대통령과 김차기대통령 사이에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김대통령에 대한 서면질의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서면질의를 하더라도 그 시기는 대통령 이취임식이 끝난 뒤인 2월26일부터 28일 사이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감사원도 “왜 특감기간을 2월28일까지로 정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그같은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러나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경제청문회가 실시되면 지난해 노동법을 반대하고 기아 및 금융개혁법 처리 때 발목을 잡은 국민회의도 자유로울 수만은 없을 것”이라며 “경제위기를 탈피해야 하는 시점에서 어차피 길게 끌고가면 서로 좋을 게 없기 때문에 김대통령 임기내 처리하려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재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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