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제 사원시대④]이원재/근무에 자율성 부여

  • 입력 1998년 2월 1일 20시 12분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회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직원을 채용할 때 응시한 적이 있었다. 다국적 기업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국내기업에만 근무했기 때문에 외국 기업의 인사관리 형태는 무척 생소했다. 본사에서 나온 면접관으로부터 얼마를 받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기본급에 고정상여금과 실적상여금, 차량유지비 연월차수당 등 각종 수당을 얼마씩 받고 있고 매년 호봉이 어떻게 올라간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더니 면접관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순간 “뭔가 잘못됐구나”하는 걸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봉제와 연공(年功)에 따른 호봉제 임금체계를 이해하지 못했던 서로의 차이 때문이지만…. 현재 근무하는 한국마크로는 창고형 할인점을 운영하는 네덜란드계 유통회사. 이 회사도 대다수 외국계 회사처럼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초창기에 국내 유통업체에서 온 종업원들은 국내 기업에 있을때 받아온 식대와 차량수당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외국 경영진의 반응은 냉담했다. 임금을 지급하면 그것으로 식사도 하고 승용차도 유지하고 하는 것이지 별도의 수당을 달라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유통회사라는 특성상 인건비 절감이 회사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인건비 비중은 절대적이다. 연봉제를 채택한 이유도 합리적인 임금체계와 능력과 실적에 따른 보상이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국내외 직장생활을 통해 느낀 점은 확실히 연봉제의 장점은 있다는 것이다. 그 첫째가 인건비의 실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간접 인건비도 고려해야 하지만 직접 인건비를 파악할 때 종업원 전체의 연봉을 간단히 합하기만 하면 된다. 반면 매년 너무나 많은 종목의 수당이 지급되는 동종 회사의 급여수준을 파악, 비교하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다음으로 연봉제는 근무의 자율성 확립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종업원에게 부여한 직무를 수행하는 대가로 지급하고 업무성과에 따라 조정되는 연봉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창조적 능력이 더 큰 부가가치를 내는 정보사회에서는 과거처럼 경험이 더 이상 중요한 가치 창출요소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마크로에 있으면서 학력 나이 경력 등의 연공이 아닌 실적과 능력에 따른 보상체계가 종업원의 사기 진작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지켜본 사례는 적지 않다. 한국마크로가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한지 2년이 막 지났지만 임시직 사원으로 들어와 2단계이상 승진, 매니저가 된 직원이 여러 명 있다. 그러나 연봉제는 현재 지급하는 임금을 연간 총액으로 환산하여 지급하는 쉽고 단순한 일이 아니다. 일의 가치에 대한 평가, 소위 직무분석과 평가가 선행돼야 하고 종업원의 실적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시스템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연봉제가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단지 나이가 들고, 경력이 많아서, 학력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누려온 기존의 가치를 깰 수 있는 마음가짐은 필요하다고 본다. 이원재(한국마크로 인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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