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제 사원시대 ⑦]송덕영/직급 오를수록 위력 발휘

  • 입력 1998년 2월 4일 19시 42분


연봉제는 회사의 수익과 주가의 상승이 자신의 수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회사 경영자나 임원의 위치에 올랐을 때 가장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월급쟁이 임직원은 평생 큰 돈을 만질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월급쟁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도 다분히 비하적이어서 큰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업을 구멍가게라도 가져야 하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장사가 돈버는 데는 최고’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월급쟁이라도 직급이 올라가고 책임이 무거워질수록 또 실적에 따라 재벌 오너 이상으로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대기업의 전문 경영인의 능력 발휘와 성과를 냉정하고 철저하게 평가 보상하는 장치가 미흡하다. 미국의 월트 디즈니가 경영난에 빠지자 주주들은 창업주인 디즈니가(家)의 사람들을 내쫓고 전문 경영인 마이크 아이즈너를 회장으로 앉혀서 보기 좋게 회사를 회생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때 아이즈너 회장은 엄청난 스톡 옵션(회사가 사원에게 회사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을 받아 5년 동안 무려 2억3천6백만달러를 벌어들인 거부가 됐다. 그의 수입도 화제가 됐지만 그는 돈을 쓰는데도 호탕했다. 96년 한해만도 불우아동을 위해 8천9백만달러를 흔쾌히 내놓았다. 우리는 미국의 대기업 회장들의 수입이 한 해 몇백만달러씩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러움이 섞인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천문학적 숫자의 봉급이 가능한 것은 엄밀히 말해 보너스와 스톡 옵션에서 지급되는 수익 때문이다. 주식 1주당 수익률이 증가하면 자연히 스톡 옵션으로 받은 자신의 주식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회장 등 임원들은 회사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실제로 맥코 셀룰러의 중역으로 있던 짐 박스대일이 넷스케이프회장으로 스카우트되는 조건에는 11%의 넷스케이프 주식 배당이 있었다. 그리고 회장 취임 후 판매 신장에 힘입어 회사 주가를 5배로 올려놓아 자신의 개인주식자산이 5억달러로 늘어난 경우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미국 대기업의 중역들은 ‘반은 회사를 위해서 일하고 반은 월가(Wall Street)를 위해 일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회사로부터 받은 주식이 올라가도록 하는데 신경의 반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만약 미국 대기업의 회장이나 사장 등 임원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기업과 같이 외형을 중시하고 수익률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사회에서 당장 해고당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미국 광고회사에서 10년간 수석부사장으로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연간 매출 7백20억달러에 순이익 71억달러를 기록한 세계 최대의 소비제품회사에 몸담고 있다. 그러면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우선 회장을 비롯한 모든 임원들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회사의 경영상태를 세세한 부분까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주주를 대표하는 이사회가 자신들의 봉급과 기타 상여금 혜택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만큼 주주의 수익률을 높이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한 자리에 오래 앉아서 재작년이나 작년과 똑같은 일을 하고도 자동적으로 호봉이 올라가는 우리 기업의 현실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송덕영<필립모리스 아시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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