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를 무력화해가며 소액주주들의 발언권과 권익을 봉쇄해온 기업 관행이 사라지게 됐다.
비상경제대책위원회는 이번 구조 조정안에서 이사해임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을 낮추고 누적투표제를 도입, 소액주주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대표소송에 필요한 지분율은 현행 1%에서 0.05%로, 이사해임청구권은 1%에서 0.5%로, 장부열람권은 3%에서 1%로 낮아진다.
외국에서는 소액주주들이 이사해임청구권 등을 통해 주주로서의 권익을 챙기는 한편 경영진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퇴직연금기금은 92년 일본 노무라증권과 다이와증권에 부당거래 등을 이유로 사외이사를 선임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 록히드사의 주주인 해롤드 시몬스는 1년 동안 4명의 이사를 갈아치웠다.
소액주주들의 단결된 힘은 국내에서도 당장 이번 주총에서부터 위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참여연대는 소액주주들과 연대, 이달중 열리는 SK텔레콤의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해임청구권을 행사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이 대한텔레콤과의 내부거래와 주식변칙증여로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것. SK텔레콤 지분을 6.7% 확보한 타이거펀드는 주주제안권을 행사해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해외투자 때 주주의 동의를 얻는다는 조항을 정관에 명시할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대표소송권은 이사나 감사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아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주주가 해당 임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 원칙적으로는 회사가 소송을 제기해야 하지만 대주주가 이를 꺼릴 경우 다른 주주들이 회사를 대표해 소송을 할 수 있다. 소액주주들은 누적투표제를 통해 표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주총에서 원하는 이사나 감사를 선임할 수 있다. 지분 1%당 한표씩 행사해 이사와 감사 등 6명을 선임할 경우 5%씩의 지분을 가진 3명의 소액주주들이 90표를 한명에게 몰아주는 것.
이번 구조조정안에서는 적대적M&A가 도입되면서 의무공개매수제도가 폐지돼 소액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소지도 있다. 이 제도는 25% 이상 지분을 취득할 경우 의무적으로 50%+1주를 공개매수하도록 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기존 대주주들만 독식하는 폐해를 견제하는 효과도 있었다.
〈백우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