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를 열어보니 달러는 없고 빚문서만 그득했다.”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이 탄식했듯 우리나라의 총외채는 세계은행 집계방식 기준으로 93년말 4백39억달러에서 97년말에는 1천2백8억달러(IMF 기준으로는 1천5백44억달러)로 4년 사이에 거의 3배로 늘었다. 반면 통화당국이 당장 쓸 수 있는 가용외환보유고는 작년말에 불과 88억7천만달러로 빠져 있었다.
짧은 기간에 이처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유는 뭔가. 또 그 과정에서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경제청문회가 풀어내야 할 숙제 1순위다.
▼‘불끄기’해법 논쟁〓외환위기에 대한 우려가 이미 96년말부터 제기됐다는 점은 본시리즈 첫회에 지적한 바 있다. 주목할 대목은 집안에 외환위기라는 불이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놓고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이 상반된 처방을 제시했다는 점.
“재경원은 집안의 소화기(消火器)로 꺼보자고 했고 한은은 소방서(IMF)에 119 전화를 걸어 소방차를 부르자고 했다.”(한은 실무자)
재경원쪽 얘기는 약간 다르다.
“기아사태로 상황이 악화한 8월쯤 ‘우리가 직접 빨간 펜을 들고 외채를 안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자산과 부채를 일일이 체크하면서 당장 갚으라든지, 처분하라든지 지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은쪽은 금융기관들에 자구조치를 취할 시간을 준 뒤 연말쯤에 가서 체크하자고 했다. 한은도 상황을 안이하게 봤다는 얘기다.”(재경원 실무자)
▼외환위기를 불러온 원죄들〓재경원은 지난 연말 외환위기 책임과 관련해 작성한 내부보고서에 책임의 일단을 시인하고 있다. 요컨대 외채급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후대응도 미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은쪽에서는 화재의 원인이 부실건축, 즉 구조적인 측면에 있다고 강조한다. 한은 국제부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자.
“첫째, 단기로 자금을 끌어와 장기로 운용하는 ‘기간 불일치’를 방어할 장치가 없었다. 즉 만기 3개월짜리 단기차입금을 들여오려면 3개월내 처분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 없었다. 둘째, 금융기관 투자대상 적격등급을 예컨대 BBB 이상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셋째, 단기차입이 많아졌는데도 오히려 금리가 높은 중장기차입을 제한했다.”
원인은 더 있다. 재경원은 94년 이후 외화차입 관리를 풀기 시작, 외채 규모가 이후 3년 동안 2배 이상으로 폭증했다.
“금융기관의 외화차입 한도를 확대하고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도 해외차입의 길을 열어주었다.”(당시 재경원 금융정책실 관계자)
국제수지 적자는 외채로 누적됐다. 경상수지 적자는 92년 45억달러에서 96년에는 2백37억달러로 폭증했다.
결국 재경원의 ‘원하는 만큼 빌려다 쓰고 있는 대로 나가서 쓰라’는 달러관리가 눈덩이 외채를 불러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단기외채로 너무 몰렸다〓정부는 총외채 가운데 1년 미만 단기외채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방치했다. 총외채 대비 단기외채 비율은 92년 43.7%에서 93년 53.5%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 비율은 95년에 57.8%로, 96년에는 58.3%로 계속 높아졌다.
“단기 해외차입이 문제였다지만 파생금융기법이 발달했기 때문에 중장기 해외부채와 큰 차이가 없다.”(재경원 금융정책실 관계자)
재경원이 시장에 어두웠음을 확인케 하는 주장이다. 단기외채가 커질수록 우리 경제는 안팎의 충격에 민감해진다. 안팎으로 금융기관 신인도 저하, 동남아 통화위기가 짓누르기 시작한 상황에서 단기외채의 만기가 집중적으로 돌아오면서 상환연장(롤오버)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한 것.
결론적으로 94년 이후 늘어난 외채의 만기구조가 1년 미만에서 10년까지 고르게 분산되었다면 만기가 일시에 몰려 허둥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종금사에서 증폭된 외환위기〓해외에서 단기자금을 들여와 국내에서 장기 대출하는 종금사들의 차입 및 대출 불일치(미스매치)가 외환위기를 부채질했다.
“대부분의 종금사가 해외에서 1년 미만의 단기자금을 조달, 리스 등 5년 이상 자금이 묶이는 장기 자산으로 운용하고 있음을 지난해초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규정위반이 아닌데다 당시에는 상환연장이 잘되고 있어서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재경원 관계자)
상당수 종금사들은 심지어 하루짜리 외화대출인 ‘오버나이트 론’을 조달해 3년짜리 외화 유가증권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다. 정말 무모했다.
▼금융개혁법안 바이러스〓청와대에 근무했던 A씨는 “금융개혁법안과 연계해 외환위기를 처리하려 했던 것이 큰 문제였다”고 단언했다. “재경원과 한은이 IMF 구제신청 때까지 보이지 않게 알력을 빚었다. 한은 국제부에 전화를 해도 한은법 개정반대 농성을 하느라 담당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게 그의 증언.
한은 관계자는 “당시 재경원은 한은을 말려 죽이려는 법안을 고집했고 강경식(姜慶植)부총리 이하 재경원 간부들은 이 문제에 너무 집착했다. IMF 구제금융 신청을 앞두고 그 일이 그렇게 급했느냐”고 반문했다.
외환위기라는 국가위기를 눈 앞에 놓고도 외환관리의 두 축이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었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고장난 보고라인〓외환위기의 막판처리에서 공식 라인이 거의 가동되지 않았음이 확인되고 있다.
A씨는 “10월부터 강전부총리에게 외환위기를 얘기하고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보고하자고 했는데 묵살됐다. 강전부총리는 산업은행 등을 통해 2백억∼3백억달러를 빌리고 금융개혁법이 통과되면 외환위기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경식(李經植)한은총재는 “대통령이 작년 11월10일 밤 집으로 전화해왔을 때 ‘IMF에 가야겠다’고 보고했다. 김인호(金仁浩)수석이 대통령께 저간의 사정을 잘 보고하고 있는 것으로만 짐작했다”고 말했다. 이총재는 김대통령에게 “강부총리나 김수석은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조인트를 깔(무릎을 발로 찰) 정도로 기합을 줘서 대처하도록 해야 한다”고까지 건의했다고 한다.
尹鎭植(윤진식)전 청와대비서관은 당시 김수석을 배제한 채 김대통령에게 외환위기 대책을 직보했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말하자면 강경식―김인호로 이어지는 공식라인이 외환위기 대처에 제 역할을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외환관리 시스템 문제〓정부와 외국환은행 기업의 모든 외환거래 정보는 1차적으로 한국은행으로 모인다. 이 방대한 양의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가공하느냐가 외환관리의 핵심. 재경원 관계자는 “국내외환시장의 하루 거래규모가 20억∼30억달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외환의 수급에 관한 한 완벽한 장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 외환시장의 하루하루 거래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단기에 몰려있는 외채상환 스케줄과 해외점포에서 발생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외국환업무를 하는 금융기관만도 50여개에 이르는데다 모든 실물거래와 자본거래 자료를 모아 통계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재경원 관계자는 “지난해 7,8월만해도 한은이 금융기관 해외점포에 빌려준 외화는 언제든지 빼다 쓸 수 있는 ‘가용 외환보유고’였지만 국가와 금융기관의 신용도가 급락하면서 불과 1,2개월만에 가용할 수 없는 보유고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윤희상·백우진·이용재기자〉
▼ 한국은행측 입장 ▼
외환위기를 놓고 외환관리자들에게 ‘왜 이 지경이 됐고 누구 잘못인가’ 묻는 것은 하수정화처리장 담당자들에게 ‘이 가운데 누구 때문에 하수구 물이 더럽게 나왔고 정화처리에 엄청난 돈이 드는가’를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외환관리 실무에서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면할 생각은 전혀 없다.
기업도 갑자기 부도가 나지 않듯 국가경제도 다르지 않다. 국내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로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국내 은행에 이어 국가 신인도가 떨어졌다. 외국금융기관과 투자가들이 일제히 자금을 회수하려 했다. 견딜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국제금융계에서 외화조달이 안되고 금융기관이 일제히 부도위기에 몰리자 한국은행은 종합금융사에 이어 은행에도 결제용 외환을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최고 20억달러까지 보유고가 소진됐다. 당혹스럽고 무서운 일이었으나 ‘국가부도’를 낼 수는 없었고 시장에 이를 알리는 것도 ‘자살행위’였다.
작년 상황은 먼저 기업들의 잇따른 부도→금융기관 부실→국제금융시장 파급→외환위기 순으로 진행됐다.
▼ 재경원측 입장 ▼
재정경제원의 단기적인 실수를 들라면 ①원화 저평가를 조속히 못한 점 ②금융기관 해외점포 감독을 충실히 하지 못한 점 ③정치적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금융개혁법안(3개 금융감독기구 통합)에 너무 매달린 점 등이다.
장기적으로는 ①현정부 초기 일시적인 경상수지흑자의 관리를 제대로 못한 점 ②행쇄위 등의 규제완화 요구로 외환규제에 필수적인 감독권을 사실상 포기한 점 ③외환 및 금융정책 발표를 ‘화끈하게’ 조기에 못한 점 등을 꼽을 만하다.
금융개혁법안은 돈을 안들이고 국제신뢰도를 회복할 수 있는 강력한 조치였다. 그러나 정치적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3개 감독기구의 통합에 너무 치중하다가 금융시장 구조조정과 관련한 나머지 법안까지 통과시키지 못한 것은 실수였다.
돌이켜 보면 현정부 초기 ‘세계화’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취해진 해외금융에 대한 규제완화는 꼭 필요한 감독사항마저 풀어버린 꼴이 됐다.
외환보유고는 신용도 급락으로 인한 외화조달창구가 막히면서 한국은행이 금융기관 해외점포에 예치한 돈을 찾을 수 없게 되면서 가용보유고가 줄었다. 솔직히 재경원도 예상치 못했던 전례없는 상황이었다.
[외환관리 일지]
▼10월17일 △외환시장 개입 포기, 원달러 환율 1천원 돌파 △외국환규정 개정, 시설재용 상업차관규제 완화, 기업의 해외 현지은행 설립 허용
▼10월29일 △장기 설비자금 상환용 해외현금차관 도입 허용 △대기업 무보증장기채(5년이상) 98년1월 조기 개방(종목당 30%, 1인당 6%), 대기업 무보증 전환사채(CB) 투자한도 확대(종목당 50%, 1인당 10%) △실수요 아닌 단순보유위한 외화매입 규제
▼11월19일 △1일 환율변동폭 2.25%에서 10%로 확대 △기업규모 관계없이 3년 이상 회사채 및 전환사채(CB)에 대한 외국인투자 허용(종목당 30%, 1인당 10%) △연내 국채 발행, 세계 주요 금융기관 대상으로 판매
▼11월21일 임창열경제부총리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신청
▼11월21일 외국환평형기금 외화표시국채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