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노사시대/고용환경]경쟁력 높아지나 「일자리」는 불안

  • 입력 1998년 2월 6일 20시 28분


이제 우리 사회는 고용관행의 대변혁기에 접어들게 됐다. 노동력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대다수 노동자는 노사정위원회가 정리해고제를 즉각 시행키로 합의했다는 소식에 ‘내 일자리는 어떻게 되나’하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노동시장은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의 법제화로 일자리를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쉬워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급속하게 진전되게 됐다. ‘평생 일터’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고용불안이 일상화하는 시대로 진입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노사정위원회가 합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돼 2월말부터 정리해고가 합법적으로 시행되면 올 봄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전문가들은 우선 금융 자동차 철강 등 구조조정 여지가 큰 부문과 국내 브랜드 의류업체 등 경영난이 심각한 부문에서 먼저 대규모 정리해고가 시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경영난을 겪고 있는 재벌기업들도 정리해고 시행여부를 심각히 검토할 것으로 보이지만 명예퇴직제 자동감원 등과의 병행책을 강구하느라 일단 관망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근로자 입장에선 이번 합의에서 ‘양도 인수합병(M&A)시 정리해고’조항 신설이 주는 충격이 특히 크다. 이 조항은 현행법에 없었음은 물론 대법원 판례도 ‘기업을 사고 팔 때 새 사용자가 인수합병 기업의 근로자를 계속 고용해야 한다(고용승계)’는 기조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6월 창원특수강이 삼미특수강을 인수하면서 2백1명을 해고한데 대해 “근로관계를 승계하지 않은 것은 정당한 이유없는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정, 인수합병 공포에 떨고 있는 근로자들을 안심시켜준 바 있다. 물론 경영계 입장에선 피인수 기업 근로자의 고용을 떠맡을 부담없이 기업을 인수할 수 있게 되므로 구조조정이 대폭 활성화될 전망이다. 새 정부도 부실기업은 인수합병을 통해 정리하고 재벌간 빅딜을 통해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최적의 경영여건에서 사업을 하게 함으로써 경제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부실경영에 따른 책임을 근로자가 전적으로 지고 해고당해야 하는 데 대한 근로자들의 반발과 사회불안을 줄이기 위해선 앞으로 정부가 정리해고의 절차를 엄격히 준수토록 엄밀히 감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현행 판례에 따르면 해고는 연령 근속연수 부양가족 근로자의 능력 및 재산상태를 고려해 대상자를 공정하게 선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절차가 산업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궁극적 목표는 사용자의 고용조정 권한 확대 뿐만 아니라 노동자도 쉽게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나 이번 합의가 실직자에게 재취업 기회를 얼마나 넓혀 줄지는 의문이다. 정부의 ‘경비절감을 위한 해고→기업수지개선→투자확대→일자리 창출→해고근로자 재고용(리콜)’이라는 도식은 경제난으로 투자확대의 실익이 없을 때 무너질 수 있다. 결국 경제난을 극복할 때까지는 노동자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확보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근로자파견제의 도입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실직자들이 정규직으로 취직하기 힘들게 하는 요인이지만 해고의 폭이 커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로 기업내 근로관계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연구원 김소영(金素英)박사는 “한국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법적으로 지키기보다는 인간적인 관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직장 분위기가 경직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자가 자신의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비해 성장 산업에 필요한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하준우·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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