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금융사는 외환위기의 원흉인가 피해자인가.’
종금사는 70년대 중반 시중은행들이 제대로 해외차입을 못하던 시절 외국 유명은행과 합작해 세운 금융기관으로 은행들을 대신해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워졌다.
호시절을 구가하던 한국 국제(현재 현대) 새한 한불 아세아 한외 등 이른바 선발 6개 종금사는 94년과 96년 두차례에 걸쳐 24개 투금사가 종금사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무한 경쟁에 휘말린다.
특히 96년 4월초 총선직전에 종금사 전환이 결정된 15개사에는 충북투금 신세계투금 울산투금 등 부실투금사들까지 포함돼 있어 당시 구설수에 올랐다.
선거판의 정치논리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게 당시의 중론이었다.
정부는 투금사의 종금사 전환을 허가하면서 국제업무와 리스업무 등을 허가했다. 국제업무에 어두웠던 후발 종금사들은 그야말로 주먹구구식 해외차입을 일삼았다.
선발종금사의 한 관계자는 “연초가 되면 후발종금사의 국제업무 담당자들로부터 ‘올해 해외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성하실 건가요’라는 전화가 걸려온다”며 “떡장수가 ‘떡사려’하면 따라오면서 ‘나도요’하는 한심한 꼴이었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지난해 상반기 부실기업의 부도를 막아보겠다며 만들어낸 부도유예협약이 종금사들에 카운터펀치를 먹였다.
3개월짜리 기업어음(CP)할인 업무를 주로 하는 종금사들에 부실기업에 꿔준 돈을 받지 말라는 협약은 종금사의 자금흐름을 막아버리는 둑이었던 것.
이 협약은 또 자금난에 몰린 종금사들이 다른 기업들에 대해 자금을 회수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면서 결과적으로 우했기업들까지 부도위기에 몰리게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명령에 따라 10개 종금사를 사실상 폐쇄한 재정경제원은 최근 한가지 고민이 있다. 최근 자금지원 협의차 방한한 세계은행 소속 한 미국인 여류 변호사가 던진 질문 때문.
“당신들 이러다가 (폐쇄당한 종금사들로부터) 소송당하는 것 아니에요?”
재경원이 무분별하게 놓아먹인 종금사를 부도유예협약을 통해 연쇄부도의 원흉으로 만들고 급기야 폐쇄까지 한 대가를 피해자(종금사)들로부터 소송을 당함으로써 톡톡히 치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용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