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금융사들이 외환위기의 주범이라는 시각은 잘못됐다.
외환위기가 오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대기업의 차입경영이다. 정부는 대기업의 차입경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몰랐다. 지난해 5월 재정경제원 고위관계자에게 “추가차입을 못하면 경영을 할 수 없는 대기업이 전체의 80%”라고 말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또 정부가 기아그룹의 처리를 차일피일 미룬 것이 금융기관의 신인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에 지정된 직후 한 조찬회에서 강경식(姜慶植)전부총리에게 기아그룹을 현대나 삼성 등 다른 기업에 인수시켜야 한다고 건의했의나 강전부총리는 “정부는 힘이 없다”는 이야기만 했다.
외환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처도 너무 늦었다. 작년 7∼8월경에 이미 정부나 한국은행이 나서 해외차입을 하지 않고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종금사들이 외환위기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실채권이 너무 많아 신인도가 떨어지고 외화를 주로 단기로 빌려 장기로 투자한 것은 잘못이다.
외채조달과 운용면에서 만기가 크게 어긋나는 것에 대해서는 감독당국이 규제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오히려 부추겼다.
또 투자금융사들을 종합금융사들로 무더기 전환해준 것부터 잘못됐다. 투금사들은 종금사로 전환하기 위해 재경원과 국책연구소 등에 적잖은 로비를 했다. 과거 투금사의 영업행태는 은행이나 상호신용금고와 비슷했는데 이를 성격이 전혀 다른 종금사로 전환해 문제의 불씨를 만들었다.
현재 종금사들은 말만 자금중개기관이지 사실은 예금대출기관이다. 일례로 종금사들이 기업어음(CP)을 팔 때는 이면보증을 붙여 통장으로 판다. 은행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