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회장직」 사라지려나?…총수 주력社대표 검토

  • 입력 1998년 2월 10일 20시 13분


‘이건희(李健熙) 삼성전자회장’‘정몽구(鄭夢九) 현대건설회장’ ‘김우중(金宇中) 대우자동차회장’….

지금까지 수십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를 호령하던 재벌총수들이 졸지에 ‘그룹회장’이란 직함을 내놓고 계열사 회장으로 ‘강등’될 처지에 놓였다.

발단은 김대중(金大中) 차기대통령이 그룹회장실과 기획조정실을 없애는 것이 좋겠다는 견해를 표명하면서부터. 거기에다 선단(船團)식경영의 본원지인 재벌그룹을 보는 사회적 시각이 곱지 않은 것도 주요 이유.

이런 분위기를 타고 비상경제대책위원회가 상법상 실체가 없는 그룹회장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주력사 대표이사로 취임하도록 각 그룹에 요구하고 나서서 그룹마다 ‘협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몰려 있다.

실제로 각 그룹들은 그룹총수를 1, 2개 주력사 대표이사 회장으로 내려앉히는 작업을 내밀히 진행하고 있어 머지않아 ‘그룹회장’이라는 자리가 재계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재벌총수들이 ‘그룹회장’이란 직함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초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과 함께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그전까지만 해도 ‘정주영(鄭周永)현대건설회장’‘김우중대우실업회장’ 등 각 주력기업을 대표해왔으나 그룹규모가 커지면서 그룹을 대표하는 ‘그룹회장’자리에 오른 것.

그후 재벌상속이 거듭되고 족벌경영이 뿌리를 내리면서 ‘그룹회장’이외에도 ‘명예회장’ ‘총회장’ ‘원조회장’ ‘왕회장’ 등 직함의 인플레가 계속돼 왔다.

재계에서는 최근의 재벌개혁 바람에 대해 “그룹총수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주력사 대표이사 취임을 검토하고 있을 뿐 그룹회장이라는 직함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룹의 실체가 남아있는 한 그룹회장의 역할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러나 최근 새정부측의 개혁요구에 따라 그룹회장실이 폐지되고 주력사 기조실이 그룹총괄 업무를 대신하게 되면 그룹단위의 사업발표나 경영계획 추진 등이 축소돼 그룹의 실체가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는 전망도 있다.

또 그룹회장이 계열사 회장으로 내려앉을 경우 다른 계열사의 전문경영인 출신 회장과의 역학관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일본도 우리나라의 재벌과 비슷한 ‘계열기업 집단’체제가 남아있으나 이들 계열기업 전체를 대표하는 ‘그룹회장’은 없으며 주력금융사 대표가 계열 기업간 인사나 자금이동을 논의하는 주력사 사장 협의회의 간사역할만 맡고 있다.재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혈연이나 계열관계로 이어지던 그룹경영관행이 투명성과 경쟁력을 기준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며 “그룹회장 직함뿐만 아니라 그룹총수의 존재 자체도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영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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