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여 동안 부실기업의 처리방향은 기업에 따라 ‘갈지자(之)’를 그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부정책을 이끄는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
정부와 기아그룹이 화의냐 법정관리냐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던 지난해 가을,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기아문제가 두려운 것은 10조원의 부실여신이 아니라 어떻게 해결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한보그룹이 부도나면서 청문회가 열리고 관련자들이 줄줄이 처벌되자 “부실기업 처리의 기준은 특혜나 정치논리가 아닌 시장논리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진로그룹이 부도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채권금융단에 ‘부도유예협약’을 맺도록 유도했다.
쌍방울그룹이 부도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행정력을 동원, 종금사의 자금회수를 자제시키고 미국계 은행인 BOA에까지 회수 자제를 요청했다. 해태그룹에는 아예 ‘협조융자협약’을 만들어 정부와 채권단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했다. ‘자금시장의 어려움이 너무 심각하다’는 상황논리가 ‘시장논리’를 압도한 셈.
정부의 우호적인 시장개입은 뉴코아그룹에도 적용됐다. 최근 한화그룹에는 협조융자라는 명목으로 두차례에 걸쳐 7천4백여억원이 지원됐다.
반면 기아 처리가 ‘법정관리―공기업화’로 가닥이 잡히자 국제사회에선 ‘기업부실의 국가화’라고 조롱했다. 결국 공기업화는 무산위기에 빠져 있고 최근에는 제삼자인수 등의 해법이 검토되고 있다.
〈이용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