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국회 막판쟁점]『예산처 어디로』…與野 파워게임

  • 입력 1998년 2월 15일 21시 01분


기획예산처의 소관을 둘러싼 여야의 이견이 임시국회 막판 최대 현안이 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예산기능은 정부의 ‘심장’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기획예산처는 예산(돈)이라는 혈액과 영양분을 각 부처에 공급, 생명력을 부여한다. 과거 재정경제원이 ‘부처위의 부처’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예산의 기획 편성기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가 기획예산처를 대통령 직속으로 고집하는 이유는 정부개혁의 핵심을 재정개혁으로 보기 때문이다. 긴축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하에서 예산권을 관료에게 맡길 경우 종래의 ‘나눠먹기’식 예산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대통령에게 예산권을 부여, 국난타개와 개혁을 위한 대통령의 노력에 힘을 실어주자는 논리다. 이는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이기도 하다. 김차기대통령은 박상천(朴相千)총무에게 “나한테 맡겨 달라. 만일 기획예산처를 대통령 직속으로 함으로써 권력집중이 의심된다면 어떤 견제장치를 만들어도 좋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예산기능을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향후 각 부처의 예산안이 크게 달라지는 효과가 있다”며 “예산을 따내기 위한 부처나 국회의 무분별한 로비도 크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련도 기획예산처를 대통령직속으로 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한나라당 주장대로 총리실로 가는 것을 내심 바라는 표정이다. 자민련에서 총리를 맡는 것이 기정사실인 이상, 총리실 기능강화를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민련 이정무(李廷武)총무는 13일 기획예산처를 총리실산하에 두는 문제를 국민회의측과 협의하려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부당했다. 한나라당은 표면적으로는 기획예산처를 대통령직속으로 할 경우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각료 인사권에 각부의 살림권까지 쥔다면 어떤 전횡을 해도 막을 길이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10인 10색’인 당 내부사정도 반영돼있다. 예산권이 대통령에게 갈 경우 대통령이 이를 무기로 거대야당인 자신들을 무력화할 수 있고, 가뜩이나 구심력을 상실한 당의 궤멸상태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다. 또 국회 예결위를 통해 민원성 예산을 따내던 관행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고 거꾸로 이를 미끼로 한나라당 의원들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예산처 문제는 김대중차기정부와 거야인 한나라당의 자존심을 건 파워게임의 성격이 짙다. 한 부처의 소관문제가 정부출범 자체를 위협할 정도가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윤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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