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금융위기와 일본 금융기관의 연쇄부도 사태를 접한 뉴욕의 월가(街)에서는 드디어 미국식 자본주의 경영이 일본식 경영을 꺾은 쾌거라며 자축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미국식 경영에 의지하지 않고선 살아날 길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는 미국에 못지않은 건전한 경제를 자랑하는 독일을 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일본은 종합상사와 관세동맹을 축으로 선발 자본주의국가를 무섭게 따라잡은 독일의 상법을 도입했고 우리도 60년대 들어 일본의 상법을 들여왔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흑자상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우리는 외채더미에 시달리고 있다. 혹시 잘못 모방한 것은 아닐까.
독일에도 우리의 재벌이나 일본의 계열(系列)같은 기업그룹인 콘체른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백화점식 확장을 해온 우리나라 재벌과는 달리 한 우물만 파왔다. 10대 콘체른만 보더라도 각각 자동차 전기 화학 철강으로 업종이 전문화되어 있다. 우리는 독일경제의 이런 ‘자율장치’를 간과한 결과 재벌의 문어발식 팽창을 막지 못하고 오늘날 한계상황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독일도 1830년대 경제력 집중문제로 거센 도전을 받았지만 근로자의 권익을 대표하는 공장위원회를 법으로 규정, 위기를 타개했다. 종업원도 기업가와 똑같이 기업발전에 협력할 권리를 가진다는 정신은 현 독일기본법에도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
독일의 대기업은 예외없이 지주와 종업원 대표가 반반씩 동수로 구성되는 경영협의회를 두도록 돼있다. 경영협의회는 경영진 임명뿐 아니라 이사회의 주요 결정사항을 승인하는 권한을 갖고 있어 미국의 주주(株主)이상으로 기업경영을 견제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일본식 경영을 유지, 발전시키고 싶다면 그 원조격인 독일의 경영협의회의 운영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재벌의 오너가 기업경영을 좌지우지하기엔 우리 기업의 덩치도 너무 커졌다. 우리 기업도 이제는 주주와 경영진과 종업원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새로운 구심조직이 필요하다.
강형문 (한은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