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은 23일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재벌기업의 기아자동차 인수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 “삼성에 이어 현대가 기아 인수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재벌만능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고 비난했다.
기아자동차는 이에 앞서 이날 오전 박제혁(朴齊赫)사장 주재로 고위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자력회생 의지를 재천명했다.
기아의 고위관계자는 “현대의 기아인수는 경제력 집중문제를 낳을 뿐만 아니라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정책방향과도 맞지 않는다”며 현대인수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삼성그룹은 이날 오전 비서실을 중심으로 긴급회의를 여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했으나 공식 코멘트는 일절 삼가기로 했다.
그러나 삼성측은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기아처리는 공개입찰방식으로 가야하며 공개입찰방식이 결정되는 등 상황이 바뀌면 삼성도 기아인수문제를 다시 검토해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산업은행 등 기아그룹 채권단은 “현대의 인수의사 표시로 일단 기아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제공된 것이 아니냐”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현대가 어떤 조건을 제시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인수조건에 관심을 나타냈다.
채권은행인 조흥은행측은 “이자나 원금을 유예해달라는 현대측의 주장은 대우의 쌍용자동차 인수방식과 같은 것으로 채권단의 동의 여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은 “정부는 기아처리 과정에서 여신규제의 예외인정 관련 법규정을 특정기업을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것이며 투명한 절차를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위원장은 특히 현대의 기아지분 인수가 경쟁입찰 방식을 거쳐야 하느냐는 질문에 “반드시 ‘시장’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 제삼자 인수로 갈 경우 경쟁입찰 방식이 유력함을 시사했다.
크라이슬러 GM 등 국내에 진출한 외국 자동차업체들은 “아직 자동차업계 구조개편의 향배가 가닥이 잡히지 않아 뭐라고 논평할 단계가 아니다”며 “일단 현대의 기아인수 추진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영이·이용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