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차기대통령으로서 가진 TV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고 우호적인 분위기속에 진행됐다.
당시는 질문 자체도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호소를 담은 침착한 것이었고 답변도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질문은 경제난으로 인한 고통과 새 정부에 대한 실망 탓인지 추궁에 가까운 것들이 많았고 김대통령은 답변에 땀을 흘렸다.
질문자들은 공격적이었고 김대통령은 다분히 수세적이었다. 김대통령은 질문 중간중간 당혹스러운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설득논리를 펴는 모습 역시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대구의 한 택시운전사는 “불황으로 입술이 바짝바짝 탈 정도”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IMF가 갈수록 더 할 거라는데 도대체 언제 풀릴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시내에 빈 차들이 서 있다” “의류 같은 것들이 창고대방출로 넘쳐나오고 있다” “실제로 해먹고 살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정말 절실한 고충의 말씀”이라며 “금년 1년과 명년 전반까지는 정말 고생해야 한다. 이건 도리가 없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서울 YWCA 이주영회장은 “서울역 등에 나가보면 노숙하는 실업자들이 늘고 있고 주부들과 가장들에게는 실업이 가장 위험하고 무섭고 고통스러운 것인데도 정부의 실업대책은 피부에 와닿지가 않는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김대통령은 “실업문제처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말로 답변을 시작한 뒤 “국회에서 예산통과가 늦어지는 등 여러가지로 해서 2개월을 허송했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먼저 국회로 떠넘겼다. 김대통령은 이어 정부의 4대 실업대책을 구체적인 재원까지 포함해 상세히 설명했지만 방청객들은 여전히 와닿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한국노총부위원장은 정부의 고용안정정책에 대해 매섭게 추궁했다. 그는 “노동계 전체에 약 5천건의 부당노동행위가 접수돼 있다”면서 “지난번 국민과의 대화에서 노동자나 기업이 잘못하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김대통령도 “부당노동행위는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기업들이 전혀 처벌을 받고 있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만 부당노동행위를 한 기업인 네사람이 구속됐고 2백3명이 입건됐다”고 응수했다.
김대통령은 “부당노동행위가 있으면 관계기관에 신고하라. 그런데도 만일 적당히 하게 되면 내가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TV대화의 대표질문자로 선정된 8인 중 민주노총측 질문자가 참여를 거부한 것도 전과는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문 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