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도성장시대의 삶의 방법으로 저성장시대를 살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국민 모두가 깊은 성찰을 통해 새로운 삶의 양식(樣式)을 개발해야 할 상황이 됐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잘 살아보세’가 마치 기적을 낳는 주문(呪文)처럼 경제번영을 이룩했다. 또 ‘소득과 소비’가 삶의 모든 것인양 행동해왔다.
소비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거대한 다이내미즘을 고전적 마르크시스트는 일찍이 깨닫지 못하고 그저 단순한 ‘분배행위’로만 오판했기 때문에 구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이 경제로 인해 붕괴한 것이다.
21세기 신화는 ‘시장경제’이고 키워드는 ‘소비’이다. 미국 케네디정권의 브레인이었던 성장주의 경제학자 로스토는 유명한 저서 ‘경제성장의 여러 단계’에서 ‘대량 소비사회’의 개념을 처음 학문적으로 정립했다. 경제적으로 볼 때 인류의 천년왕국은 ‘대량소비’라는 것이다. 이 책의 무게와 영향은 어쩌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필적한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대량소비’를 급격히 과식해서 치명적인 배탈이 난 환자로 비유할 수 있으리라.
IMF한파가 좀 누그러진 듯한 지금, 지나친 소비절약은 경제의 회복에 걸림돌이 된다는 소비의 복권(復權)운동이 나라 안팎에서 차츰 일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매우 일리있는 말이지만 소비로의 단순한 회귀만으로 IMF관리체제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우선 ‘소비’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과 성찰이 필요하다. 소비의 양면성 즉 가치와 반(反)가치를 뼈저리게 알아야 한다. 소비성향이 지난날 고도성장의 추진력 역할을 해 왔지만 반면 제동없는 과소비가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무한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난 적절한 소비만이 IMF 관리체제를 이겨내는 지름길이다.
‘적절한 소비’는 합리적 경제적 지표와 아울러 이를 장기간 일상화 생활화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 ‘의지’는 오늘날 소비사회에서 실종됐던 정신적 가치를 부활시킴으로써 굳게 다져질 수 있다.
소비란 욕망이다.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바로 인격이다. 좀 지나친 표현이 되겠지만 지난날 우리사회는 경제 행위는 만연했으나 항로장치 제어장치와 같은 인성(人性)과 인격은 거의 실종됐던 것이 아닌가. 마인드를 상실한 소비는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없다. 뒤늦었지만 소비보다 더 보람있고 즐거운 정서생활 지식탐구 소망 사랑 나눔 사회봉사 등을 통해 절제 있고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여 더불어 사는 정신풍토를 구현하는 일이 시급하다. 위기탈출에는 샛길(間道)은 없고 정도(正道)만 있다.
유영구(명지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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