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대상이 어느 선까지 상향될지 여전히 안개속이다. 퇴출기업 선정은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과 핵심 3, 4명의 실무간부만이 관여할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전해짐에 따라 퇴출의 폭이 의외로 커질 가능성도 현재로선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5대 그룹 주력 계열사가 실제 정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금융권과 재계의 조심스러운 전망.
이런 가운데 전경련 및 주요 그룹 관계자들은 정부의 강공(强攻)이 속도조절 없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대해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재(再)판정대상은 30개 이상〓당초 8일 발표할 예정이었던 퇴출대상 기업은 20개. 각 은행이 개별적으로 간사은행(상업은행)에 통보한 정리대상 1백9개의 20%에도 못미친다.
정부의 방침 변경에 따라 추가로 30개 이상 기업이 일단 은행측의 ‘살생부(殺生簿)’에 오를 전망이다. 이들 중엔 막상 정리할 경우 심각한 은행 부실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돼 정리 대상에서 빠졌던 대기업도 상당수. 협조융자를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졌던 일부 그룹에 대해선 퇴출여부 심사가 보다 엄격해질 전망.
▼5대그룹 주력사는 비켜간다〓4일부터 현대 3개사, 대우 LG 각 1개 계열사 정도가 퇴출 대상에 오른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외채가 불어나거나 해외매각설이 나돌았던 혹은 내수침체로 위기에 몰린 몇개 계열사가 구체적으로 거명되지만 신빙성은 높지 않은 편.
5대그룹 주력사가 포함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금융권의 판단. 주력사의 경우 5대 그룹이 마음만 먹으면 회생시킬 여력이 있는데다 실제 퇴출할 경우 경제에 미칠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 이와 관련, 재계에서는 “A그룹이 주거래은행과 퇴출대상을 놓고 흥정을 벌이고 있다”는 말이 나도는 등 벌써부터 온갖 소문이 무성하다.
전경련 관계자는 “일반인들이 이름을 듣지도 못한 5대그룹 계열사만 수십개”라며 “이들이 정리후보 0순위”라고 말했다.
▼재계의 정부불신은 심각한 수준〓당초 5대그룹을 퇴출심사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은 다름아닌 윤원배(尹源培)금감위 부위원장의 공식 발언. 윤부위원장은 지난달 전경련 회의석상에서 ‘5대그룹 구조조정계획이 현실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D그룹 관계자는 “불과 한달만에 5대그룹 구조조정이 기대에 못미치게 된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정부에 대한 신뢰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설사 5대그룹까지 포함시켜 퇴출심사를 하더라도 굳이 공개적으로 떠들 필요는 없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재계는 이번 조치를 선거를 의식한 ‘정치게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