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흥산업, 콘돔으로 세계정복 『IMF 겁안나요』

  • 입력 1998년 6월 4일 20시 30분


“성욕(性慾)이 있는 한 불황은 없다.”

IMF불황에 나라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지만 국내 최대의 콘돔업체 서흥산업(대표 김덕성·金德成)은 요즘 휘파람을 불고 있다. 공장을 3교대로 24시간 풀가동시키며 매달 3천만개 이상의 콘돔을 말 그대로 ‘찍어낸다’.

25년째 콘돔을 만들어온 서흥산업이 IMF에도 끄떡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삼은 데다 한발 앞서 추진한 구조조정 노력이 결실한 덕분. 지난해 매출액은 1백50억원으로 그리 큰 액수는 아니지만 세계 콘돔시장에 ‘메이드인 코리아’ 선풍을 일으킨 주역.

한국은 콘돔 소비량이 유난히 적은 나라. 업계에서 추산하는 국내 콘돔 소비량은 월 7백만개로 콘돔 소비층을 1천만명으로 볼 때 1명이 한달 동안 한 개도 채 사용하지 않을 정도.

‘시장이 좁다’고 느낀 서흥은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려 전체 생산량의 80%를 세계 45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올들어 환율상승에 힘입어 수출액이 한달에 1백70만달러에 이른다.

서흥산업은 특히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를 주요 수요처로 삼아 안정적인 수출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서흥 콘돔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이유는 탁월한 품질 때문. 피임과 성병 예방이 목적인 콘돔은 품질이 바로 ‘생명’. 서흥에서 만든 콘돔은 30∼40ℓ의 공기를 집어 넣어도 터지지 않는다. 국제 기준인 18ℓ의 두 배. 그만큼 질기고 ‘안찢어진다’는 얘기다. 이같은 기술력으로 서흥은 95년 콘돔업계 사상 최초로 ‘ISO9002’를 따내는 개가를 올렸다.

80년대 중반 이후 에이즈의 공포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콘돔 시장은 초호황을 누렸다. ‘없어서 못팔 정도’로 공급이 달리자 국내에 7개, 세계적으로 3백여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새로 생겼다. 물량이 갑자기 늘자 후발업체의 덤핑 공세가 시작됐고 시중에는 불량콘돔까지 나돌았다.

경쟁이 심해지자 서흥은 92년부터 과감한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인원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청주와 증평 두 곳에 있던 국내 공장을 증평 한 곳으로 통합했다. 모든 작업이 끝난 것은 지난해 10월. IMF의 한파가 한반도를 급습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이봉삼(李奉三)상무는 “IMF이후 일찍 귀가하는 남편들 때문에 콘돔소비량이 크게 늘고 있다는 우스개는 있지만 콘돔산업 전체가 호황인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 다른 업체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서흥의 콘돔은 화장품으로 착각할 정도로 포장이 세련됐다. 약국에서 쭈뼛거리며 “그거(콘돔) 주세요”하는 대신 일반 슈퍼마켓에서도 내놓고 팔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략. 지난해 2월 서울 이태원에 전세계 80여종의 콘돔과 성인용품을 갖추고 콘돔백화점 ‘아프콜’을 연 것도 같은 취지다. 최근에는 PC통신에 성인용품 매장을 열어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현재 서흥에서 생산하는 콘돔은 40여가지. 천편일률적이던 디자인 패턴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일반 돌출 특수형)와 색깔(분홍 청색 녹색 등), 향기(바닐라 초콜릿 딸기향 등)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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