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외국 회사가 우리나라에 와서 만든 물건도 많이 사야 해. 안 그러면 도로 자기네 나라로 가버려서 우리나라가 더 가난해진단 말이야.”
회사원 K씨(39·경기 안양시 평촌동)는 얼마전 초등학교 5학년인 딸과 중학교1학년인 아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듣고 퍽 난감했다.
“다들 외국기업이 국내에 투자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국내에서 만들어진 외국기업 제품을 배격하는 것이 아이들 눈에도 이상하게 비쳤나봐요. 이제 어떤 제품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 판단해 소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제통화기금(IMF)직후 국산품 애용운동이 전국을 휩쓸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또 달라졌다.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적극 추진하면서 국산품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때 일부 주유소에서 외제차에 주유를 거부하는가 하면 한 문구업체는 단지 회사명이 영어라는 이유만으로 부도를 맞는 등 국산품 애용운동이 극단적인 외제배격으로 흘렀던 것이 사실.
그러나 국내 제조업분야에 진출한 3천6백29개 외국업체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국산품이냐”고 반문한다.
외국인투자법인인 EMI코리아에 근무하는 박성준씨(30)의 항변. “우리회사의 연간매출 2백여억원 중 본사송금은 30억원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1백70억원은 인건비 재료비 세금으로 국내에서 다시 사용되는데 누가 우리더러 국산품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의 불만이 이쯤되자 산업자원부는 부랴부랴 내년부터 국내 생산제품에 대해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원산지표시를 붙이기로 했다. 현대자동차 이종섭 홍보과장(34)은 “일본혼다의 해외법인인 혼다 아메리카는 미국회사로, 일본 IBM은 일본 회사로 인식되는 것이 국제적 추세”라며 “우리도 국내에서 생산되는 외국제품이라도 국산품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영이기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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