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에 들어가는 시기는 부실기업 명단이 발표되고 은행권 구조조정 윤곽이 잡힌 뒤인 이달말경이나 내달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부실금융기관의 임원들에 대해서도 고의 또는 중과실로 관련 법령과 규정을 위반, 조직에 재산상 손실을 초래한 사실이 드러나면 금융감독위원회를 통해 배임 및 횡령 혐의로 변상책임과 해임권고 형사고발 등을 하기로 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5일 “사정당국과 국세청 금융감독위원회 등이 5월13일경부터 일부 재벌 총수 및 고위경영진의 불법행위에 대해 내사를 벌여 이미 상당한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까지 D, J, H, K, N, L사 등 10여개 재벌급 기업의 총수와 경영진이 이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며 “이들 중 몇몇은 협조융자를 받은 부실기업의 관련자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도가 심한 경우 주주와 채권자를 대신해 구상권행사와 재산환수는 물론 형사고발 등 강도높은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들 기업주나 고위경영진은 자금출처를 조사하지 않는 리히텐슈타인 키프로스 코스타리카 등지에서 페이퍼컴퍼니(서류상의 회사)를 설립, 현지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 자금세탁을 한 뒤 미국 유럽 등에 개인용 저택을 비롯한 각종 부동산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 기업주는 미국에 20만달러, 영국 런던 근교에 시가 12만파운드(약 19만6천달러)를 호가하는 주택을 각각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부 인사는 해외에 역외펀드사를 설립, 고금리성 상품에 투기성 투자를 하던 중 작년말 환란이 발생하자 달러를 국내에 반입, 거액의 환차익을 챙겼으며 원화 환율이 하락한 뒤 다시 달러로 바꾸어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당국의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작년말 해외로 빠져나간 2백억달러의 핫머니성 헤지펀드 중 최소 5백만달러 이상이 이같은 자금이었다는 것.
해외에서의 자금조성은 해외 현지법인을 통해 부품과 원자재를 국내로 수입하면서 수입단가를 현지 생산자로부터 실제로 구입한 단가보다 높게 책정, 차액을 현지에서 빼돌리는 수법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지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빌린 뒤 실제 현지 법인에게는 적게 투자하고도 국내에는 더 많이 투자한 것처럼 신고하거나 서류상으로 현지 법인간에 3,4차례 거래한 것처럼 꾸며 자금을 빼돌렸다는 것.
이 밖에 국내에서 자기자산을 처분, 회사용 물품 구입비 명목으로 해외에 송금하는 방법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수출입가격을 조작해 외화를 빼돌리는 행위를 막기 위해 이전가격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키로 했으며 관세청은 외환거래 통관자료 등 자금이동정보를 종합 관리해 자금밀반출과 자금세탁 및 탈세를 단속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재정경제부 고위관계자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잘 살거나 예금자는 빈털터리가 돼도 은행경영진은 살찌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막기 위해서라도 부실 경영인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병희기자〉bbhe4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