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은 ‘정부가 부실기업 정리를 도와줬다’고 공통된 반응.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계열사가 포함돼 차라리 다행이다” “뚜껑을 열어보니 덩치 큰 기업은 다 빠졌다”는 식의 촌평이 무성하다. 삼성그룹의 삼성시계(종업원 87명)는 이미 설비를 모두 매각했고 현대도 현대알루미늄(종업원 7백명)을 제외한 나머지 퇴출대상은 모두 규모가 미미. 현대의 선일상선과 SK의 경진해운은 해운업계에조차 잘 알려지지 않아 5대그룹 퇴출기업 머릿수 채우기용이라는 평가.
○…협조융자나 부도를 맞았던 중견그룹들도 비교적 안도하는 분위기. 퇴출대상이 이미 매각 합병 청산 등을 추진했던 계열사들이기 때문. 고합그룹 관계자는 “주거래은행의 개입으로 강력한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한 덕분에 살았다”고 안도.
반면 그룹 주력사인 한일합섬이 퇴출대상에 오른 한일그룹은 침울한 표정. 김중건(金重建)회장이 보유한 경남모직마저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 한국 섬유산업사에 큰 획을 그었던 한일의 신화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퇴출 대상에 한개의 계열사도 포함되지 않은 대기업들은 나름대로 배경을 설명하면서 ‘표정관리’하기에 바빴다. 30대 대그룹중 이날 퇴출명단에서 빠진 곳은 한진 금호 롯데 대림 두산 한솔 코오롱 동국제강 동부 아남 동양 대상 강원산업 새한 등 14개 그룹.
한진 관계자는 “항공 해운 등 수송 분야에만 70% 이상 집중하고 있어 ‘문어발’식으로 경영하는 다른 대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 금호도 “그룹 부실의 원흉처럼 서러움을 받아온 아시아나항공의 장기적인 성장성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나름대로 분석. 두산 등도 “한발 빠른 구조조정 노력이 인정 받은 것으로 본다”고 자평.
부채 비율이 216.4%로 가장 낮은 롯데는 “당연한 결과”라며 ‘퇴출명단에 신경 쓸 우리가 아니다’는 반응.
○…빅딜 대상으로 거론돼온 삼성그룹과 LG그룹은 “빅딜이 필요하면 하겠다”며 입장을 대폭 후퇴했고 ‘삼각빅딜’을 깨뜨린 당사자로 지목된 현대그룹도 “현대가 정부 방침에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것으로 비쳐진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적극 해명. 이에 따라 방북중인 현대그룹 고위층이 귀국하는 23일 이후에 본격적인 협상테이블이 마련될 것으로 재계는 관측하고 있다.
〈박래정·홍석민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