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말이 현실로 나타남에 따라 은행 경영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금융거래 행태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나타날 전망이다. 이른바 ‘금융빅뱅’의 진정한 서막(序幕)이 오른 것.
▼의미〓은행 불사(不死)의 신화가 드디어 깨졌다. 퇴출대상은행들은 관치금융 때문에 경영이 부실해졌다고 주장하지만 이번의 5개 은행 퇴출조치는 방만한 부실경영의 결과에 경영자 종사원이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들 은행의 주주들은 논리적으로는 책임 주체의 일원인 동시에 가장 큰 피해자다.
고려대 경영학과의 한 교수는 “금융부실의 가장 큰 원인이 관치(官治)라고는 하지만 은행원들도 방만한 경영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은행은 경제의 혈맥 중에서도 심장과 동맥에 해당한다고 비유한다. 은행이 산업이나 국민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일부가 셔터를 내린 종합금융사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는 것.
정리대상인 동화 대동 동남 경기 충청 등 5개 은행이 은행권에서 차지하는 개별적인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5개 은행을 모두 합하면 △총자산 44조4천6백15억원 △총여신 26조6천6백3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한꺼번에 이만한 규모의 금융기관이 정리된 것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문 일이라고 금융감독위원회는 설명했다.
조흥 상업 한일 외환은행 등이 조건부 회생의 시험대에 올랐다는 사실은 5개 소규모은행의 퇴출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공개매각될 예정인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을 포함하면 6대 시중은행이 모두 수술대위에 누운 셈.
▼파급효과〓△5개 은행 퇴출 △조흥 등 대형 시중은행의 조건부 회생 △국민 등 5개 은행의 퇴출은행 인수로 은행판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작에 불과하다.
이번에 경영평가를 면한 은행들에 대해서도 금감위가 경영평가 후 추가퇴출을 시킬 계획인데다 조건부 승인 판정을 받은 은행은 앞으로 한달 안에 외자유치나 합병과 같은 기사회생의 대안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 또 부실은행을 인수, 선도은행으로 부상한 국민 등 5개 은행도 자산부채인수(P&A)에 따른 후유증을 어떻게 봉합하느냐에 따라 선도은행으로서의 위치를 더욱 굳힐지, 동반부실화할지의 기로에 서게 된다.
심한 금융경색과 고금리속에서 어렵게 목숨을 연명해온 기업들의 자금난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퇴출은행과 거래해온 업계 관계자 가운데는 인수은행과 새로 거래를 트는 경우 ‘주워온 자식’ 대접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고금리를 제시한다는 이유로 안전성을 따지지 않고 부실금융기관과 거래해온 고객들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도 철퇴를 맞았다.
▼문제점과 남은 과제〓가장 시급한 일은 퇴출은행 직원들의 저항으로 일부 마비된 금융시스템을 정상화시키는 것.
금융구조조정은 한국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룰 수 없는 일인 만큼 은행원들이 금융시장 정상화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문제가 해결돼도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와 국제신인도 회복은 요원하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P&A에 따른 시너지효과보다는 우량은행의 동반부실화 가능성이 더 크다”면서 “이번 조치로 한국이 금융구조조정에 미온적이라는 국제사회의 우려는 다소 완화시켰지만 신인도 회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광암기자〉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