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비리 수사]장회장 『여야정치인에 작년 수십억줬다』

  • 입력 1998년 7월 10일 06시 42분


청구그룹 비리사건을 수사중인 대구지검은 장수홍(張壽弘)회장이 지난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명예총재측과 김윤환(金潤煥)부총재측, 국민회의 권노갑(權魯甲)전부총재측에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돈을 줬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9일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 외에 한나라당의 또다른 부총재 한명, 영남지역 P, K의원도 장회장에게서 거액을 받은 혐의를 잡고 수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돈을 받은 측이 정치자금이라고 답변할 공산이 크고 대통령선거 등에서 오간 정치자금을 수사 처벌한 선례가 없어 사법처리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또 한국통신 전현직 간부들의 비자금 조성 및 사용에 대해 추적해온 수사기관은 전기획실장 김모씨 등이 지난해 대선 당시 안기부 직원의 권유에 따라 한국통신 사장 기밀비에서 1억원을 빼내 한나라당 후보측에 제공한 사실을 확인했다.

사정당국의 고위관계자는 “한나라당 이명예총재측에서 받은 돈은 받은 시기로 볼 때 대선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명예총재를 비롯한 야당 정치인을 조사하면 정치보복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당국과 검찰에 따르면 장회장은 검찰조사에서 대선 직전 이명예총재측에 그의 측근 S의원 등을 통해 10억원 이상을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장회장은 또 한나라당 김부총재측에 10억원 이상을, 국민회의 권전부총재측에 수억원을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장회장이 준 돈이 단순한 정치자금인지, 아니면 청탁과 관련한 대가성이 있는 뇌물인지를 규명하기 위해 계좌추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부총재측과 권전부총재측의 계좌추적을 통해 돈을 받은 시기와 액수를 파헤치고 있으며 돈이 넘어간 시기에 청구가 맡은 공사 진행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의 대가성 여부를 수사중이다.

검찰은 장회장의 비자금계좌를 발견, 수사중이나 치밀하게 돈세탁을 해 자금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장회장이 거액의 회사공금을 가(假)지급금 명목으로 빼내 정치권에 직접 건네주고 회사공금을 철저히 세탁해 조성한 자신의 비자금계좌에서 인출한 돈으로 가지급금을 갚는 방식을 사용했다”면서 “비자금계좌에서 나온 돈의 종착지가 회사로 되어있어 계좌추적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여야는 청구비리에 정치인들이 대거 연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사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잔뜩 긴장하고 있다. 국민회의 등 여권은 동교동계 핵심인 권전부총재가 연루된 것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사정의 칼날이 다른 여권인사들에게까지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권전부총재측이 받은 돈의 성격과 시기 등에 따라 여권내에 미칠 파문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 지도부가 포함된 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검찰수사를 ‘표적사정’이라고 주장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여권이 안기부의 정치개입 파문을 잠재우고 나아가 7·21 재 보선과 정계개편을 위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것”이라며 앞으로 사태 추이를 지켜보면서 강력한 대여투쟁 방안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청구사건에 대한 수사가 장기화함에 따라 이미 정치권과 시중에는 수사에 대한 온갖 소문이 확산되고 있으며 법조계와 시민들 사이에서는 관련 여야 정치인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양기대·조원표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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