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나산건설 『부도덕』에 입주자만 애꿎은 피해

  • 입력 1998년 7월 14일 19시 50분


《대형 건설업체의 부도가 속출하면서 이들 업체 아파트와 오피스텔 입주예정자들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법정관리신청이 기각된 나산 기산등이 시공한 오피스텔 입주예정자들은 분양대금을 되찾는 것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 ㈜청구는 중도금을 일괄 대출받아 전용해 파산하면 입주예정자들은 입주할 아파트를 은행에 압류당할 처지다.》

▼청구 중도금대출 알선 사기▼

작년말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 신청중인 주택업체 ㈜청구는 분양을 촉진하기 위해 작년초부터 입주예정자들에게 보람은행 장기신용은행 등의 중도금 대출을 알선하는 상품을 개발했다.

청구는 입주예정자가 잔금납부 때까지 중도금 이자를 대납해주고 입주예정자는 잔금을 낼 때 중도금 원금과 이자를 갚으면 된다. 입주예정자가 물어야 할 대출금리가 직접 대출받을 때보다 1%포인트 정도 쌌다. 이렇게 유리한 조건 때문에 작년 한해 동안 4천여가구 2천4백여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청구는 입주예정자들이 대출받는 중도금을 한꺼번에 은행으로부터 넘겨받아 경영자금으로 전용한 후 부도를 냈다.

입주예정자들은 이 회사가 파산하면 남은 중도금을 자신들의 돈으로 내야 하고 이미 대출받은 중도금의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만 한다.

아파트와 오피스텔 입주예정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회사와 대출은행을 상대로 고소를 했거나 고소를 준비중이다.

일산지역 비대위 관계자는 “회사에서 한꺼번에 중도금을 일괄 대출받는 사실에 대해 시공사와 은행이 알려주지 않았고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도금 전액이 시공사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은행 관계자는 이에 대해 “중도금 명목으로 대출된 자금은 모두 소액가계대출로 중도금 납입기일마다 줄 필요가 없어 한꺼번에 대출해줬다”면서 “법적인 하자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시공사가 파산하는 등 최악의 사태 발생시에는 입주예정자들의 재산을 압류하는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법률구조공단 상담부장 이대순(李大淳)변호사는 “시공사가 입주예정자에게 중도금 대출이 일괄적으로 회사에 넘어간다는 것을 충분히 숙지시켰다는 증거를 대지 못하면 이행각서가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고 은행의 대출계약도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변호사는 “이 사건의 경우 은행이 소비자에게 직접 원금과 이자를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황재성기자〉jsonhng@donga.com

▼나산건설 법정관리 신청 기각▼

14일 나산종합건설과 기산이 신청한 법정관리 개시 신청이 기각됨에 따라 두 회사가 시공하는 오피스텔을 분양받은 입주 예정자들은 시공 중단 또는 지연 피해는 물론 분양대금마저 떼일 위험에 처해 있다.

재판부가 “주 채권은행이 협조융자를 거부해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청산 또는 파산절차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기산이 진행중인 주택사업은 11개 지구 총 4천2백여가구 규모이나 모두 주택공제조합의 분양보증을 받고 있다. 시공 지연에 따른 입주 지연말고는 커다란 피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울 목동 수서, 경기 일산 등지에서 주상복합건물 공사를 벌여온 나산의 입주예정자 4천1백여명은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건물은 시공사가 부도를 내면 주택공제조합이나 보증업체가 공사를 대행하는 분양보증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입주예정자들은 분양선납금 1천2백억원을 포기하고 다른 시공업체를 선정해 공사를 계속하거나 이미 낸 분양대금을 되찾는 수밖에 없다.

빚잔치를 통해 이미 낸 총 7천억∼8천억원 규모의 분양대금을 되찾는 것도 사실상 어렵다. 9개 주상복합건물 사업지구 대부분의 대지가 금융권에 담보로 잡혀 있고 분양자의 채권순위는 담보권자에게 뒤진다. 이미 일부 대지는 경매가 진행중이다.

분양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 법원 결정에 대해 불만을 나타낸다. 개정 회사정리법이 경제적 가치로만 청산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어 회사 청산이 가져올 사회적 파급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나산 입주예정자들은 나산을 업무상 배임으로, 은행을 배임 공모 혐의로 소송을 내 담보 설정 자체를 무효화하는 자구책을 강구중이다. 이미 분양한 주상복합건물이나 오피스텔의 대지를 분양자들의 동의없이 은행에 담보로 잡힌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하며 은행도 해당 대지가 이미 분양된 것을 알고 담보로 설정했으므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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