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초비상 中]말로만 『총력지원』 곳곳 걸림돌

  • 입력 1998년 8월 3일 19시 25분


수출업계가 기진맥진해 있다. IMF체제이후 갖은 악조건 속에서도 어렵사리 버텨왔던 수출업체들은 하반기들어 한계상황에 빠졌다. 산업기반의 약화와 무역금융 마비, 환율불안 등 악화된 수출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한 머지않아 수출기반 자체가 붕괴될 것으로 업계는 우려한다.

▼말뿐인 수출진흥〓봉제완구류 수출업체인 G사는 일본 바이어로부터 받아놓은 60만달러의 수출신용장이 휴지조각이 될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중국 현지 법인에서 생산된 제품을 중계 무역 방식으로 일본에 수출하는 이 업체는 수출 신용장을 들고 은행으로 달려갔으나 은행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창구 직원은 “기존 담보로는 부족하다”며 추가 담보를 요구했다.

“갑자기 그만한 담보를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지만 은행측은 요지부동.

“빨리 답신을 달라”는 바이어의 재촉에 김모사장은 속만 끓이고 있다.

가죽제품 원단을 가공 수출하는 D사는 짧은 기간에 상당한 기술 경쟁력을 갖춘 업체. 해외 바이어를 적잖게 개척해 연간 3백60만달러 규모를 상담중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보증을 받지 못해 신용장 개설이 막혀 있다. 담보 부족에다 신규업체라 과거 실적이 저조해 못믿겠다는 이유에서였다.

D사측은 “대통령은 ‘수출만이 살 길’이라면서 수출지원에 총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는데 일선 창구에서는 수출업체의 얘기는 들은 척도 안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은행은 물론이고 은행의 보수적 운영행태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출보험공사 등 지원기관들도 외환위기 이후 은행과 ‘닮은 꼴’이 돼버렸다.

엄격한 한도 운영, 담보 또는 보증인 요구, 수출보험 기피…. 용케 지원대상에 올라도 심사기간이 길어져 납기를 못맞추기 일쑤다.

정부가 밝힌 무역금융 지원 목표액은 총 53억달러. 수입신용장 개설 지원용으로 30억달러, 수출입금융 지원자금으로 20억달러, 수출환어음 매입용 3억달러가 잡혀 있다. 그러나 7월말 현재 집행된 실적은 겨우 11억7천만달러(22%)에 불과하다.

▼공격적 상담을 못한다〓매달 평균 5백여개의 수출업체가 문을 닫고 있다. 업체들은 생존에 급급한 실정이다 보니 신규시장 개척이나 바이어 관리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여유가 없다.

자동차 부품 등을 연간 1천만달러 가량 수출하는 W사의 정우진(鄭佑鎭·42)사장은 “중소 수출기업의 모든 기반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단언했다.

W사가 거래중인 수십개 업체 가운데서도 이미 절반 이상이 부도 등으로 쓰러졌다. 이러다보니 제대로 된 품질에 납기를 맞추는 것도 버거운 실정이다. 클레임에 걸리는 건수도 작년보다 2,3배나 늘었다. 그만큼 수출에 드는 ‘과외 비용’이 증가한 셈이다.

정사장은 “수출업계가 ‘말기적 현상’을 보이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섬유업체인 S사는 요즘 ‘원자재 사정을 봐가며’ 소극적으로 수출상담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2주전에도 미국으로부터 4백만달러 가량 주문을 받았지만 원자재를 확보할 자신이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의 환율 급락은 수출업계로선 ‘엎친데 덮친 격’.

건자재업체인 J사는 한달만에 환율이 1백원 이상 떨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5% 이익을 붙여서 수출했는데 수출금액이 10% 내려가버리면 오히려 5% 손해를 봐야 한단 얘기죠. 바이어는 빨리 물건을 안보내면 거래선을 옮기겠다고 아우성인데….”

▼발목잡는 부대비용〓부대비용도 너무 올랐다. 국내 시중은행의 외환매매 수수료는 기준율+1.5∼2.5%. IMF이전 0.4%에 비해 4배 이상 올랐다. 경쟁국과 비교가 안된다.

물류비용 역시 큰 ‘짐’이다. 항만하역료의 경우 품목마다 27단계의 복잡한 요율체계로 돼 있다.

항공운임은 국내 항공사들이 2월 30%나 인상했다. 하주협회는 “대량화물 할인율을 낮춘 것까지 감안하면 100% 가량의 운임 인상효과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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