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품‘메뉴’와 시장 편중〓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제품 등 10대 수출상품의 작년 수출액은 6백92억달러. 전체 1천3백61억달러의 50.8%를 차지할 만큼 절대적이다. 10대 품목의 비중은 80년 이후 줄곧 50%를 상회해 왔다.
일본의 경우 그 비율이 34%대인 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그만큼 특정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얘기. 소수 ‘대표 선수’ 위주의 진용이다 보니 그 품목의 ‘컨디션’에 따라 전체적인 수출이 큰 영향을 받는다. 반도체 업계가 최근 수년간 세계적인 공급과잉으로 고전하자 국제수지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수출품 ‘메뉴’의 편중과 함께 고부가가치가 아닌 단순기술 상품에 집중돼 있는 것도 큰 약점. 우리 수출품 가운데 절반 이상은 주문자 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얼굴 없이’ 해외에 나가는 형편이다.
시장도 특정 지역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심하다. 올 상반기에 미국 유럽 아시아 지역 시장에 대한 수출 물량은 전체의 83.5%. 특히 올들어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 대한 편중이 더욱 심해졌다.
시장이 좁다보니 국내 업체들끼리 우르르 몰려가 제살을 깎아 먹고 있다. 필리핀 철강업체들은 최근 자국 정부에 한국산 컬러강판에 대한 덤핑조사를 촉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들어 필리핀에 대한 수출 물량을 늘리고 있는 국내 철강업체들끼리 가격경쟁이 붙어 정상가보다 25달러 이상 낮은 값에 팔고 있기 때문이다.
한 종합상사 임원은 “국내 업체들은 신규시장을 발굴하기보다는 기존 시장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정글에 뛰어들어 판로를 뚫는 개척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뒤떨어진 마케팅 경쟁력〓10년째 무역업을 하고 있는 정모사장(42)은 “우리 중소기업들은 물건 만드는 실력에 비해선 마케팅 능력이 너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가령 우리의 주요 경쟁국인 대만에선 직원 10명 안팎의 중소기업들도 해외 바이어와 독자적인 상담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종합상사에 의뢰하거나 국내에 찾아오는 바이어를 앉아서 기다리는 정도에 그친다.”
올해 인도에서 열린 국제기계전시회는 일본 53개, 대만에서 94개 업체가 참가한 반면 한국은 단 4개 업체에 불과했다. 우리 기업들이 자기 상품을 알리려는 노력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무역협회 신원식(申元植)상무는 “지금은 제조업체들이 직접 해외로 뛰어들어 현지 할인점을 공략한다든지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내수시장 접근법’을 펼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통상 노하우 길러야〓수입 규제에 대한 대응도 매우 미숙하다. 4월에 호주관세청은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4개국산 폴리스티렌 수지에 대해 덤핑긍정 예비판정을 내렸다. 이 때 다른 3개국은 반덤핑관세로 t당 1백호주달러 이하를 부과받은 반면 한국산은 t당 최고 1백84호주달러를 얻어맞았다. 이같은 ‘차별대우’는 한국업체들이 자초한 결과였다. 호주관세청이 해명 자료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업체 대부분은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배짱’을 부렸다. 호주측은 당연히 자국 업계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업체들은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됐다.―끝―
〈이명재·박현진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