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이 넘는 파업사태로 생산 수출손실이 엄청난 것도 그렇지만 세계시장에서 20년 이상 쌓아온 ‘공든탑’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될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
난공불락 현대는 옛말이다. 만년 2위에 처져있던 대우가 승용차등록 대수에서 1위에 올라서고 IMF형 차종인 경차에서도 대우의 마티즈에 완패를 당했다. 레저차량은 기아에, 중형차는 출범한 지 1년도 안되는 삼성에 뒤처지는 수모를 겪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액 격차가 대우와는 3.5배에서 2.0배로, 기아와는 2.4배에서 1.8배로 좁혀졌다. 경쟁업체의 약진, 현대의 퇴조현상이 뚜렷하다.
IMF사태 이후 더 심화한 현대의 위기국면을 노동조합의 지도자가 모를 리 없다. 이 점에서 현대사태는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출발점에서부터 명분도 설득력도 없었다고 본다.
이번 사태가 정리해고에 반발하는 생존권 싸움이란 점에선 일면 동정은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이유로 법을 짓밟는 파업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더욱이 파업이 폭력사태로 과격화하는 과정에 정치색채가 농후한 노동 사회단체들까지 노골적으로 개입해 노사분규의 본질적 성격이 변질되고 말았다.
이번 현대사태는 단순히 한 기업내의 인력감축 선을 넘어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리전이자 전초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봐야 한다. 노동계는 민간부문의 대규모 정리해고가 본격화하는 시발점으로, 외국에선 투자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험대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결말이 어떻게 나든 현대사태는 향후 정리해고 분쟁의 새로운 전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번 현대사태는 건전한 노동운동의 장래에 심대한 자해적(自害的) 상처를 입혔다. 국가적인 경제위기와 여론을 처음부터 도외시한 무모한 행동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감정을 자초했다.
기업이 경영상 이유로 노동력을 감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대외에 보여줬다고 평가할지도 모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정반대일 수도 있다. 오히려 가동률이 50%도 안되는 회사가 저만한 인력정리에 저런 어려움을 겪는다면 과연 기업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를 촉발했을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
우리도 이젠 노사관계의 원형을 정립해야 할 때가 됐다. 현대사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사관계에선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기름통과 산소통, 굴뚝점거, 삭발농성이 그렇고 대립적 행태와 행정개입도 판에 박은 듯 똑같다.
앞으로 노동운동은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합법적인 공간만으로 대단한 힘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이 노동운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되 요구조건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파트너인 기업의 입장을 무조건 ‘재벌논리’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한 자세라고 할 수 없다. 더욱이 정리해고의 위법성 여부는 노조가 판단할 사항이 아니다. 그런 혐의가 의심된다면 당연히 법정에서 응징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다. 노조 지도자들은 잘못된 지도노선이 선량한 평조합원의 대량 해직을 초래할 수 있고 운동 자체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태는 또 한가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있어 정부의 확고한 원칙표방과 일관성 있는 법집행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이인길<정보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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