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현상은 ‘기업은 철저히 뒤로 숨고 브랜드만 앞으로 내세우는’ P&G의 브랜드 마케팅 때문.
IMF 이후 위기에 빠진 국내 제조업체들이 절실히 느끼는 교훈 중 하나는 ‘회사는 망해도 브랜드는 영원하다’는 것. 국내기업의 브랜드 관리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식품 생활용품 업계를 중심으로 외국기업의 체계적인 ‘브랜드 마케팅’을 배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업계가 ‘브랜드 마케팅’에 있어서 첫손에 꼽는 P&G의 브랜드 관리는 가히 놀랄 만한 수준이다. ‘비달사순’과 ‘팬틴’이 단적인 예. 우선 두 브랜드는 마케팅팀이 별도로 구성돼 있다. 예산을 따로 운용하는 것은 기본. 심지어 광고대행사와 홍보대행사도 각각 다른 업체와 외주계약을 하고 있다. 자사의 제품 대부분을 계열 광고대행사에 맡기는 국내 기업들의 관행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P&G는 비누제품인 ‘아이보리’와 화장품 ‘올드 스파이스’, 치약 ‘브렌닥스’ 등을 생산하지만 역시 P&G라는 이름은 철저히 가려져 있다. “브랜드에 자신이 있으니까 회사를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P&G의 입장.
유니레버도 브랜드 마케팅에서는 P&G에 뒤지지 않는다. 회사 이름은 일반인들에게 낯설지만 ‘폰즈’ ‘썬실크’ ‘도브’ ‘바세린’ 등의 브랜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유니레버는 폰즈 광고를 제작하는 광고대행사에 제품 이름만 부각시키고 회사 이름은 가려달라고 주문했다.
이밖에 네슬레의 ‘테이스터스 초이스’, 엠디푸드코리아의 ‘모차렐라’치즈, 나비스코의 ‘리츠’크래커, 마스의 ‘스니커즈’초코바 ‘M&M’초콜릿 등도 설명이 필요없는 제품들.
국내업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 기업들은 제품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기업의 이름을 앞세워왔다”며 “이제는 브랜드의 인지도 제고에 더 신경을 써야할 때”라고 말한다.
국내 제품 중에도 브랜드만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제품들이 있는데 굳이 ‘우산(umbrella)효과’에 매달려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
올초 부도를 내고 살충제 사업부문을 한국존슨에 매각한 삼성제약이 매각대금으로 받은 3백87억원 가운데 ‘에프킬러’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2백97억원을 차지했다는 사실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