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노사정 합의로 어렵사리 도입된 정리해고가 첫 실행단계에서 3자개입에 의해 좌초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따라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과 외국인 투자유치에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우려했다.
▼법과 원칙을 무시한 중재에 난감한 재계〓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은 24일 일제히 공식입장을 내고 “정부와 정치권의 중재는 법과 원칙을 저버린 졸속 중재”라고 비난했다.
전경련은 “노사정 합의를 통해 도입된 고용조정제도가 산업현장에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점과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사태로 인해 외국인투자 유치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경영자총협회는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정리해고를 노조가 불법 폭력행위로 저지시킬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이번 중재는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나쁜 선례를 남겨 대외신인도는 물론 기업 구조조정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며 정치권의 원칙없는 중재를 비난했다.
▼정치권의 개입에 실망한 외국인투자가들〓이번 사태를 유심히 지켜본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결같이 법으로 허용돼 있는 정리해고를 기업이 실행하는데 왜 정치권이 개입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 김헌수(金憲洙)이사는 “정리해고가 법제화됐으면 정부는 기업이 정리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결국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이 아직도 구조조정을 할 자세가 안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만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계 증권사 지점장은 “이번 사태가 외국인 투자가들 사이에서는 ‘만약 외국계 기업이 정리해고할 경우에도 정치권이 중재하려고 덤벼들 것’이란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지점장은 또 법적인 중재권한이 없는 노무현(盧武鉉)국민회의 부총재가 중재에 끼여든 점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한국은 아직도 정치논리에 의해 법과 원칙이 언제든지 무시될 수 있는 나라란 점을 외국인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프랑스계 SG증권 정태욱(鄭泰旭)지점장은 “이번 사태 이후 외국인 투자가들로부터 ‘한국에는 법과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며 “외국인 경영인들간에 ‘한국에서는 정리해고가 법제화돼 있지만 실제로는 꿈도 꾸지 말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가 만약 경제논리에 따라 타결됐더라면 강성노조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외국인 투자가들을 무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희성기자〉lee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