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앞서 기아측은 삼성의 부채탕감요구 철회여부와 상관없이 채권단에 유찰 및 재입찰 실시를 요청하고 나서 기아입찰이 막바지 극심한 혼선을 빚고 있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입찰사무국이 입찰서류에 명시된 부채탕감 부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 삼성은 부채탕감 부분을 완전히 철회하기로 했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기아측은 “이번 입찰에 참여한 4개 업체가 부채탕감을 요구해 모두 실격처리할 수밖에 없게 됐으며 이에 따라 다음달 11일 재입찰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채권단에 전달했다.
이와 관련, 유종렬(柳鍾烈)기아회장은 “유찰여부를 포함, 채권단과 협의한 최종결과를 31일 오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주요 채권기관인 산업은행과 산업자원부는 부채탕감요구를 철회한 삼성을 낙찰자로 선정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기아와 일부 정치권, 입찰참여업체인 포드와 현대측은 입찰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며 무효를 주장해 결말이 어떻게 나든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혼란에 빠진 기아입찰〓기아입찰이 낙찰자 발표를 하루 앞두고 큰 혼란에 빠진 것은 현대 대우 삼성 포드 등 4개 응찰 업체 모두가 입찰서류에 부대조건으로 부채탕감을 명시한 것이 발단이 됐다.
4개 업체 중 포드는 8조8천억원, 삼성은 2조4천억원 이상의 부채탕감을 요구했으며 현대는 신뢰할 만한 회계자료에 입각해 부채탕감규모를 결정하겠다고 표현했다. 대우는 최종실사 후 탕감액결정이라고 써냈다.
당초 채권단은 입찰서에 부대조건을 붙일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고 명시했으나 응찰업체들이 애매한 내용으로 부채탕감조건을 써놓아 이들에 부대조건의 진의(眞意) 및 철회여부를 뒤늦게 질의했다.
기아입찰사무국은 입찰 당시에는 입찰서류에 부대조건이 있을 경우 ‘심대한 불이익’을 준다고만 명시했으나 추가 질의서상엔 ‘심대한 불이익’이 ‘자격박탈을 의미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려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 것.
이 질의서에 대해 포드와 현대는 28일 “철회의사가 없다”고 통보했고 삼성은 “31일까지 해외컨소시엄 업체와 협의할 시간을 달라”며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대우는 당초 철회 불가의사를 전달했다가 삼성이 답변 유예를 요청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유예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찰이냐, 삼성 낙찰이냐〓결과적으로 4개 업체가 모두 회답시한인 28일 낮 12시까지 철회의사를 밝히지 않음에 따라 기아입찰 대행기관인 앤더슨컨설팅과 파리국립은행(BNP)은 4개 업체가 모두 자격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해 29일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서류상 가장 평점이 높은 삼성이 31일 부대조건을 철회한다면 입찰이 유효한 것으로 봐야 하며 삼성을 낙찰자로 선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또 한가지 주요 변수는 정치권과 정부 고위층의 기류. 특히 정부 최고위층에서 삼성의 인수보다는 포드 인수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기아의 향방은 서류상 평가점수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것으로 업계에선 관측한다.
포드 현대도 기아입찰사무국이 발송한 질의서는 입찰서류의 중대한 수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제법상으로 실효성이 없다며 강력히 반발, 자칫하면 국제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입찰내용이 외부에 유출돼서는 안된다는 입찰 전제조항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응찰가까지 외부에 유출됨에 따라 이번 입찰 자체가 원천적으로 무효처리될 가능성도 높다.
▼향후 기아는 어디로〓기아측의 생각대로 1차입찰을 유찰한 후 다음달 11일 재입찰 공고를 거쳐 재입찰을 실시할 경우 기아처리는 최소한 한달 가까이 지연이 불가피.
이와 함께 이번 입찰에서 부채를 한푼도 탕감하지 않았던 채권단은 부채 추가탕감 등 훨씬 불리한 매각조건을 제시해야 하는 입장에 몰릴 수밖에 없다. 포드와의 제휴를 추진해온 삼성은 이번에 최고평점을 얻음으로써 앞으로 포드와의 협상에서 좀더 적극적인 공세를 펼 수 있게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포드의 기아 인수를 바라는 정부 일각의 기류에 따라 최고 평점을 얻은 삼성과 기아의 대주주인 포드가 손을 잡을 수 있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희성·이용재기자〉lee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