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自입찰 절차 하자 「국제망신」…국가신인도 큰 타격

  • 입력 1998년 8월 31일 19시 24분


기아입찰이 막판 대혼선을 빚고 있는 가운데 치명적인 절차상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입찰사무국이 제시한 입찰조건이 갈팡질팡하는가 하면 비공개로 돼있는 응찰내용이 구체적인 숫자까지 유출되고 정부와 정치권이 중구난방식으로 기아입찰과정에 개입하고 나서 앞으로 공정성 시비와 함께 자칫하면 소송에까지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산업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끝내고 경제회복을 서둘러야 하는 정부가 국제 입찰 하나도 제대로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짐에 따라 국가신인도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입찰조건 갈팡질팡〓이번 입찰의 최대 문제점은 최초의 입찰안내서와 입찰사무국이 보낸 추가 질의서에서 입찰 자격상실요건이 다르게 명기된 것.

입찰사무국은 7월15일과 27일에 발송한 입찰공고문과 입찰안내서에서는 입찰업체가 부대조건을 달 경우 ‘심대한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불이익의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서류평가 과정에서 현대 대우 삼성 포드 등 4개업체가 모두 부채탕감에 대해 요구 또는 협의를 명시하고 나서자 “부대조건을 첨부하면 자격이 상실될 수도 있다”며 ‘진의(眞意)’및 철회여부를 질의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응찰업체뿐만 아니라 국제변호사들까지도 “입찰안내서에 애매한 용어를 썼다가 뒤늦게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응찰업체를 압박하는 것은 국제적 관례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삼성에는 질의서 답변시한을 다른 업체보다 3일간 연장해준 것도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소지가 많다.

▼정부 개입 시비〓공정성과 투명성을 전제로 한 사기업의 국제경쟁입찰에서 정부가 개입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노출됨에 따라 입찰 자체의 신뢰성이 크게 손상됐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기아처리를 조속히 해결하라고 지시하자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유찰은 절대로 없다”며 최고 점수를 받은 삼성의 낙찰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었다. 이에 따라 주요채권기관인 산업은행도 어떻게 해서든지 유찰만은 막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왔다.

그러나 정부 최고위층 일각에서는 “포드의 인수가 바람직하다”는 뜻을 내비치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아예 이번 입찰을 유찰시키고 자동차업종을 5대그룹간 대규모사업교환(빅딜)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주장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

▼비밀유출로 재입찰 난항예상〓이번 입찰을 원천적으로 무효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각사의 응찰내용이 외부로 유출됐다는 것.

당초 응찰내용이 외부로 유출될 수 없다는 단서가 붙어있었지만 8월28일을 전후해 기아입찰사무국에서는 각 업체가 부채탕감 조건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흘러나왔으며 30일에는 아예 구체적인 응찰가격과 사업계획 등 자세한 응찰내용이 공개됐다.

입찰의 최종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응찰내용이 밖으로 유출된 것은 국제적 관례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국제입찰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영이기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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