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체들이 쓰러지고 건설 실업은 실업자 양산의 ‘주범’이 되고 있다. 시공 중단은 물론 신규개발 투자도 얼어붙었다. 최악의 구직난이다. 엔지니어링과 설계업체들도 무너지고 있다.1∼2년내에 반이나 남을지 모를 일이다.
본래 건축에서의 거품은 내리막길의 신호다. 80년대 일본은 세계 건축가들 누구나가 노리는 시장이었으나 거품은 이내 꺼졌다. 30년대 공황 이후 최고 경기라는 미국도 마치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처럼 건축 경기가 피크를 이루는 작금이 내리막길의 신호라는 예측도 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건강하지 못한 내수 시장에 의존했던 건축 활황,해외의 유명 건축가들과 유명 회사 빌려오기에 바빴던 기업 건축, 대형화된 공공 건축들은 정도를 넘어섰었다. 이런 ‘막가는 길’이 ‘막다른 길’로 이어졌다.10년 거품이 꺼지며 장면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어떤 새로운 장면을 만들 것인가.
‘빙하기 속의 풍요’를 만들어야 한다.그 단서들은? ‘작은 환경의 큰 의미’를 찾는 시민들이다. 아파트 평수 늘리기 전쟁에서 벗어났으니 오히려 모처럼의 자유가 왔다. 작은 집도 어떻게 크게 사느냐, 같은 땅도 어떻게 지혜롭게 쓰느냐, 같은 값으로 어떻게 근사하게 가꾸느냐가 이제 우리 모두의 관심사다. 이러한 ‘건강한 소비자들’이야말로 건축산업의 가장 튼튼한 시장기반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신중한 발주자’가 되어야 한다. 민간은 물론이고 관(官)은 더 신중해야 한다. 예산확보도 안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턴키 입찰(설계 시공 일괄 입찰), 설계 경기(競技)를 해 놓고는 사업을 백지화하는 수많은 무책임한 사례들은 나라의 경쟁력을 깎아 먹는 행위다. 시공은 재빨리 하고 계획과 설계는 오래 고민하는 선진형 발주자가 되자. 시간비용을 고민하면 생산성은 저절로 올라간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품질경쟁’‘기술경쟁’을 하는 전문인들, 기업들이다. 진짜 강한 실력을 쌓자. 특허도 만들고, 표준화 제대로 하고, 설계기준 제대로 만들고, 제품개발 하고, 기술개발 하고, 디자인 우수하게 하고 환경에 기여하는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자. 기술력은 경쟁력의 기반이다.
‘규제 합리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떻게 하면 부정 부패 부조리 부실 비생산성 불신의 대명사라는 건설분야의 부정적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서로 맞물려 믿고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공정과 투명성은 모든 풍요사회의 바탕이다.‘거품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가치를 세워야 한다. 돈벌기 한탕하기 과시하기 편법쓰기 같은 거품적 ‘성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사는 뜻 찾기, 책임지기, 일 제대로 하기, 시스템 만들기의 ‘의미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 풍요다. 이것이야말로 속으로 무르익은 풍요이며 또다른 경제적 풍요의 사이클로 이어지는 기반이다. 아무리 ‘건축 빙하기’라지만 바로 이 때가 ‘풍요 만들기’의 적기 아니겠는가. 건축을 통한 진짜 풍요시대를 꿈꿔본다.
김진애 (도시건축가·서울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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