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부산그린벨트(중)]『세금 낼 때만 광역시민』

  • 입력 1998년 10월 11일 19시 44분


“아이고, 제가 무슨 부산시민입니까. 세금 내고 투표할 때만 부산에 산다는 생각이 드는데….”

9월 30일 오후 비바람 속에 부산 강서구 대저동 단위농협을 찾은 김정현(金正鉉·56·강서구 대저1동)씨. 손에 들린 두툼한 봉투가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17%였던 대출금 이자가 10월 1일부터 23%로 높아진다는 통보를 받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사채를 얻어 부리나케 달려온 참이었다.

옆에 있던 조합장 최계조(崔啓助·56)씨가 거들고 나섰다.

“살아가는 모양새는 70년대부터 똑같은 농촌인데 세금과 영농자금 대출조건은 6대 도시 기준에 맞춰져 있으니 어려울 수밖에요.”

벼농사를 지으면서 비닐하우스에서 배추 상추를 재배하고 있는 김씨는 “3백가구가 살고 있는 대저1동 6통에 4·4분기 영농자금이 겨우 5백만원밖에 배당되지 않았다”면서 “부산시는 반쪽만 시(市)고 나머지 반은 그냥 ‘발묶인 농촌’일 뿐”이라고 한숨지었다.

강서구의 반대편, 부산의 동쪽끝에 자리한 기장군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곳 주민들은 과거 양산군에 속해 있을 때는 △농촌지원금 △자녀학자금 △주거환경개선사업 지원금 등의 혜택을 받았으나 광역시 편입후 각종 지원금이 줄거나 아예 없어지고 오히려 도시계획세를 내야 하는등 세금 부담만 늘어났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한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 원전을 중심으로 반경 8㎞이내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다 보니 읍사무소앞 중심가 상점도 슬레이트 지붕 등 20여년전의 모습 그대로다. 유흥업소는 고사하고 그 흔한 노래방도 하나 없다. 83년 읍승격 당시 2만4천명이던 인구가 현재 1만1천8백여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지역주민들은 “울진 영광 월성 등 다른 어떤 원전지역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는데 왜 이곳만 이렇게 묶어두느냐”면서 “형평에 어긋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서구의 경우도 ‘떠나가는 이웃’이 꾸준히 늘고 있다.

초등학생의 감소추세가 특히 두드러진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년마다 6개반이었던 강서구 대저동의 대상초등학교는 전체 학급이 12개반으로 줄었다. 91년 1천3백여명이던 전교생이 7년이 지난 지금은 5백40여명만 남아있다.

‘이중 규제’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도 대단하다.

회동상수원의 수원지인 기장군 철마면은 개발제한구역이면서 동시에 상수원보호법에 묶여 있는 곳.

면정자문위원회 위원장 김형수(金亨洙·58)씨는 “이중규제로 묶여있다 보니 식품위생법과 도시계획법에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벌금을 감수하고 무허가 음식점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면서 “농사로 마땅한 소득을 올리기 힘든 상태에서 규정만 따져 주민들을 전과자로 만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부의 영농지원 정책도 신뢰를 잃고 있다.

주민 오철랑(吳鐵郎·60·철마면 와여리)씨는 “부가가치가 높은 농작물 재배를 장려한다면서 지원금을 줘놓고는 정작 일을 좀 하려들면 축사도 못짓게 하고 비닐하우스 설치에 따른 토지형질변경도 어렵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따졌다.

특히 대출까지 받아 경운기 등 농기계를 구입한 주민들은 마을 인근에 주유소가 없다 보니 1시간에 1대꼴로 오는 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나가 보자기와 가방속에 기름통을 숨겨 사오는 형편이다.

〈부산〓조용휘·김경달·이승재기자〉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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