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빅딜]정부,「개입」 마지막카드 꺼내

  • 입력 1998년 10월 12일 19시 53분


5대 그룹 구조조정을 9개월 가량 재계 자율에 맡겨왔던 정부가 ‘최후의 구조조정 압박 카드’를 내놓고 사실상 개입으로 정책 선회를 했다.

이규성(李揆成)재정경제부장관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산업경제에 영향이 크겠지만 더 이상 재벌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다”며 “재계 자율로 못할 경우 금융감독위원회가 제시한 각종 제재가 가해질 것”이라고 정부의 강경 입장을 천명했다.

정부는 이날 이장관의 기자간담회에 앞서 경제장관간담회를 갖고 석유화학 정유 선박용엔진 철도차량 항공 등 5개 업종에 있어서는 5대 그룹의 자율 구조조정안이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 반면 반도체와 발전설비 등 2개 업종에 대해서는 재계 자율안이 무의미하다고 결론지었다.

▼재벌 구조조정 어떻게 추진되나〓반도체와 발전설비 업종은 금주 내에 실사작업에 착수한다. 실사작업은 채권금융단의 주도로 자문회계법인 기업구조조정전문가(TA) 등이 참가하는 실사단이 11월말 이전에 마무리짓는다.

실사는 △자산 부채 등 재무구조 △한계설비 현황 △경영실태 △향후 사업전망 등을 대상으로 하며 이에 따른 여신회수 등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의 구체적인 실천지침을 미리 마련하게 된다.

정부는 실사를 최대한 빨리 끝내 이를 ‘재벌 구조조정의 최후 카드’로 쥐고 있겠다는 생각이다. 재계가 반도체와 발전설비 분야의 경영주체 선정을 포함한 경영개선계획을 11월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이장관은 “그러나 11월말의 자율적인 경영개선계획이 정부가 생각하는 구조조정의 속도와 강도에 미치지 못할 경우 12월부터 실사작업에 근거해 곧바로 해당 기업의 워크아웃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채권금융단이 취할 제재수단은 △자산매각 등의 퇴출 △신규여신 중단 △부당내부거래 차단 △신규 회사채 발행 제한 등 필요한 모든 조치가 포함될 것이라고 재경부 관계자는 밝혔다.

재경부 임종룡(任鍾龍)금융기업구조개혁반장은 “산업경제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오늘 경제장관들이 조율한 입장은 이같은 파급도 감수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5개 업종은 주채권은행과 자문회계법인으로 구성될 5대 그룹 사업구조조정추진위원회와 업종별 실무추진위원회가 재벌의 자율구조조정안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해당 기업의 자구노력과 경영개선계획을 협의해 11월15일까지 재무구조개선약정 시안을 마련하게 된다.

한편 5대 그룹의 나머지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 작업도 일정대로 진행해 12월말까지 1차 기업구조조정을 끝낸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정부의 진의와 전문가 평가〓정부는 재계 자율에 의한 구조조정안이제대로도출되지못한 것에 심한 불만과 불쾌감을 갖고 있는 상태다. 대외신인도 극대화를 위해 재계 자율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못한것으로결론내렸다.

한국개발연구원 남일총(南逸聰)연구위원은 “5대 재벌의 한계 계열사를 워크아웃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며 “5대 재벌의 자율 구조조정안으로는 구조조정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고 밝혔다.

산업연구원 김용렬(金龍烈)연구위원도 “비록 2개월간 지연된 측면은 있지만 선진국에서 선호하는 워크아웃의 방침을 밝힘에 따라 대외신인도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채권금융기관이 자율 판단에 의해 국내 산업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발전설비 등에 대해 퇴출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지 현재로선 미지수다.또 파급효과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박현진·신치영기자〉witnes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