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재편?]「문어발 재벌구조」대수술 선언

  • 입력 1998년 10월 16일 19시 25분


16일 금융감독위원회가 제시한 5대 그룹 계열구조 개편안은 이들 재벌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과 내부거래 등으로 얽혀있고 엄청난 부채를 끌어들여 경영돼온 이들 그룹의 선단식(船團式) 계열사 구조를 원천적으로 수술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력기업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

금융 구조조정과 함께 우리 경제 회생의 관건인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적 부분인 5대 그룹의 구조조정을 단순히 일부 부실 계열사의 정리나 재벌간의 중복사업부문 통합 또는 교환에 한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요컨대 ‘문어발’로 표현돼 온 재벌 계열사들을 주력기업만 남겨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키우고 나머지는 독립화 또는 정리를 유도해 사실상 재벌 해체를 꾀하겠다는 얘기다.

금감위는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과 재벌 등에 걸친 방대한 기업 구조조정 작업의 최종 목표를 △주력기업 중심의 경영을 통한 재벌기업의 국제경쟁력 회복 △건실하고 유망한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체제 구축으로 요약하고 있다.이런 구도 속에서 금감위는 5대 재벌의 △업종별 수직독립화 △업종내 독립기업화 △주력기업 재무구조개선으로 이어지는 3단계 계열구조개편 유도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같은 방향제시는 이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 재벌의 시대가 끝났으며 재벌은 업종이 아니라 개별기업 차원에서 몇개의 주력기업으로 경영돼야 할 것이라고 밝힌 재벌해체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재벌이 해체되지 않고서는 경쟁력있는 주력기업 중심의 대기업 경영과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체제 구축이 모두 이뤄질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는 또 한국을 국가부도 위기에서 일단 구해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구와 그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등 선진국, 그리고 외국 기업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요구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5대 재벌이 해체 단계까지 갈 것인지, 정부가 이를 강도높게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6대 이하 재벌그룹중 상당수는 IMF체제 아래 급속한 해체과정을 밟고 있다. 그러나 5대 그룹은 외견상 부분적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우리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상당수의 외국인들은 김대중정부 개혁의 성패는 정부와 5대 그룹의 힘관계에 달려 있으며 5대 그룹의 개혁 없이는 현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의미가 반감될 것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금감위도 이번에 3단계 계열구조 개편방안을 내놓으면서 그 추진 시간표 등을 자신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단계 작업에 착수해 2002년까지 3단계 작업을 완성한다는 방침이지만 그 기간중의 진통과 굴절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이처럼 기간을 길게 잡은 것 자체가 5대 그룹 개혁이 간단하지 않고 그 파장이 만만찮을 것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2단계로 제시한 동일업종내 계열사들의 독립기업화 과정에서 비주력 사업부문 정리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주력기업 중심의 체제가 갖추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금감위가 5대 그룹 계열사들간에 복잡하게 얽힌 상호지급보증 해소방안을 제시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해당 기업들을 쥐어짜서 해소시키는데는 해당 기업들의 재무상태와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금융기관들과 더 나아가 국민의 부담 위에서 정책적으로 해소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진행돼온 대기업 구조조정 자체도 한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금감위가 밝힌 바에 따르면 6월에 퇴출대상기업으로 선정된 55개 기업 가운데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은 절반이 채 안되는 25개에 불과할 정도다.

이밖에 13개는 합병, 10개는 매각을 추진중이며 나머지 7개는 법정관리를 신청하거나 아직까지 정리방안을 확정짓지 못했다. 금감위는 이와 관련, 부실판정 기업이 존속을 위해 합병이나 법정관리를 추진하는 것은 명백하게 퇴출판정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지만 정리를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라면 수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청산절차에 들어간 기업은 현대그룹 선일상선 현대중기산업, 삼성그룹 삼성시계 한일전선 대도제약 이천전기, 대우그룹 한국산업전자, SK그룹 경진해운등이다.

금감위는 5대 그룹 계열구조 개편을 채권금융기관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의 일환으로 추진토록 한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기관들이 5대 그룹을 상대로 자율적으로 이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도 미지수다.

〈반병희·이 진기자〉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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