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기아차 인수가 현대그룹의 후계 및 소유구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조짐이다.
관심의 초점은 역시 현대자동차의 향배. 현대자동차는 그동안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세영 명예회장 일가가 관할해 왔으나 지분이 극히 미미해 그룹내의 분재(分財)구도에 따라 항상 ‘위상’이 가변적인 것으로 관측되어 왔다. 기아차 인수를 계기로 불안정한 소유구도가 ‘확실히’ 정리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 내부에서는 부실상태에 있는 기아자동차를 제대로 가동시키기 위해선 그룹내 자동차통인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이 기아 아시아차를 맡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룹내에선 이같은 구도가 거의 기정 사실화되는 분위기다.
현대의 한 고위관계자도 “기아차에 대한 실사가 일단 끝나봐야 하겠지만 자동차 부문의 경영권이 어떤 식으로든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정세영―몽규 부자가 관리해온 현대자동차는 정주영명예회장 일가쪽으로 경영권이 넘어오지 않겠느냐는 예상이다.
실제 현대자동차의 지분분포는 현대중공업 9.3% 정세영명예회장일가 3.98% 현대건설 3.4% 고려산업개발과 현대산업개발 1.2% 일본의 미쓰비시상사 5.2% 미쓰비시자동차가 4.1%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는 소액주주에게 분산되어 있다.
현대는 그동안 증자를 하고 싶어도 정세영 일가의 지분이 낮아질 것을 우려해 증자를 하지 못하고 기채를 주로 했을 만큼 지분분포는 민감한 사항이었다. 그만큼 불안정한 구도였다는 이야기다.
현대가 기아 인수전에서 보인 행보도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당초 기아 인수에 소극적이던 현대가 3차 입찰에서 갑자기 적극적인 태도로 선회한 것은 이런 ‘밑그림’ 속에서 나왔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현대자동차를 ‘되찾아 올’ 경우 그룹의 공동회장인 정몽구(鄭夢九)―몽헌(夢憲) 형제 가운데 누가 자동차 경영권을 맡을지는 쉽게 점치기 힘들다. 두사람 모두 자동차 사업에 상당한 열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정몽헌회장이 현대자동차의 주주이사로 새로 등재될 때만 하더라도 정몽헌회장이 결국 자동차를 점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앞으로의 향방은 미지수다.
정몽구회장 역시 자동차 사업과 상당한 인연이 있고 자동차에서 과장 부장 이사를 거치며 줄곧 현장 경험을 쌓았다. 자신의 계열사인 현대차써비스와 현대정공도 모두 자동차와 관련깊은 업체들이다.
정몽헌회장은 LG와 협상중인 반도체 경영권 문제가 걸려 있어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않고 그가 진두지휘하고 있는 금강산 관광 사업의 성공 여하에 따라 그의 그룹내 위상이 달라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나머지 형제들의 소유구조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현대는 5대그룹간 빅딜 등을 거치면서도 몽(夢)자 형제들의 분할통치 구도는 철저히 지켰다.
몽구―몽헌형제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의 몫은 대개 그룹의 비주력기업들. 금강개발산업을 정주영명예회장의 3남인 정몽근(鄭夢根)회장이, 현대중공업을 정몽준(鄭夢準)고문이, 현대해상화재를 정몽윤(鄭夢允)회장이, 현대종합금융을 정몽일(鄭夢一)회장이 각각 갖고 있다.
작고한 넷째 동생 신영씨의 아들인 정몽혁(鄭夢爀)석유화학사장은 이번 빅딜 과정에서 삼성과의 석유화학 단일법인 설립을 양보하는 대신 한화에너지 인수라는 보상을 받았다.
결국 기아가 정세영명예회장―정몽규회장의 관리로 넘어갈 경우 새로운 형제그룹으로 분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현대 내부에선 점치고 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