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 기업들, 『나부터 살고보자』 얌체판촉 성행

  • 입력 1998년 10월 22일 19시 14분


‘염치도 체면도 없다. 경제난국에서 살아남는게 지상 과제일 뿐.’

극심한 판매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이 국내외 시장 곳곳에서 ‘이전투구(泥田鬪狗)식’ 무차별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쟁업체의 브랜드를 베끼는가 하면 성사단계에 이른 상대방의 계약을 가로채는 등 기존의 상도의(商道義)까지 무너지고 있는 것.

이같은 무차별 경쟁이 결과적으로는 제살 깎아먹기식 과당경쟁을 촉발해 업계 전체를 공멸로 몰고갈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높다.

여성내의류 양대 업체인 비비안과 비너스.

비비안이 올해 3월 고급 브랜드인 ‘노브라’ 브래지어를 출시한 직후 비너스가 ‘뉴브라’ 브래지어를 내놓으면서 치고받는 싸움이 시작됐다.

바느질 자국이 없어 옷매무새를 살려주는 ‘노브라’는 비비안 상품기획팀 10명이 1년이상 공들여 개발, 백화점 전문점에서만 제한적으로 판매하던 3만∼4만원대의 고가브랜드.

‘노브라’가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폭발적 인기를 얻자 곧바로 비너스가 디자인은 물론 브랜드명까지 비슷한 ‘뉴브라’를 8천∼1만원의 파격적인 가격으로 재래시장에 깔기 시작했다. 비비안은 비너스측에 “고가브랜드 이미지를 떨어뜨린다”며 디자인 및 상표권 도용을 항의했지만 비너스측은 “이미 오래전에 자체 개발한 디자인”이라고 반박.

이에 비비안측은 올봄 비너스가 내놓은 고가브랜드 ‘뉴섹시V브라’와 비슷한 ‘더블섹시라인브라’를 내놓고 역시 재래시장에 싼 값에 공급하는 맞불작전으로 대응하고 있다.

진로가 오랫동안 ‘부동의 1위’를 고수해온 먹는 샘물 업계는 식품업체인 농심이 올해 새로 뛰어들면서 선두를 빼앗았다. 농심은 자사 인기제품인 ‘신라면’ 대리점에 먹는 샘물 ‘삼다수’를 끼워파는 판촉으로 기존업계를 무차별 공격한 결과 사업진출 첫해에 업계 1위 자리를 빼앗는데 성공.

기존 업계는 농심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해 놓은 상태다.

이전투구식 경쟁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

일부 가전업체는 최근 중동 중남미 유럽 등의 국내경쟁사 거래처에 “경쟁사보다 무조건 10%가량 깎아주겠다”고 제의하며 ‘상대방 거래처 빼앗기’에 나서고 있어 업계전체가 긴장감에 싸여있다.

제지업계에서도 중견업체가 성사시킨 수출계약을 대기업이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해 가로채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아예 수출계약 자체를 비밀로 하는 분위기.

업계 관계자는 “어려운 시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치열한 판매경쟁이 불가피하겠지만 ‘상대방 죽이기’식의 경쟁은 업계전체의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영이기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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