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에 충실하고 중립적이며 모든 국민과 납세자가 수긍할 수 있는 공명정대한 세정을 집행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이건춘(李建春)국세청장이 지난달 23일 긴급 지방국세청장회의에서 이렇게 ‘중립’을 강조하는 지시사항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공무원 및 행정기관의 정치적 중립은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명시돼 있다.
이처럼 당연한 정치적 중립을 국세청장이 새삼스럽게 ‘선언’한 것은 국세청 조직이 그동안 정치권력에 중립적이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립적이지 못한 정도를 넘어 정치권력에 예속되다시피 해 권력의 이익과 편의를 위한 도구로 쓰였다는 것이 국세청의 솔직한 자화상일 것이다.
▼무너진 신뢰〓국세청 간부들이 세금 외에 정치자금까지 걷은 것은 작년 대선 때 처음 있은 일은 아니다. 87년 성용욱(成鎔旭)청장은 대선자금을 조달하라는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11개 기업으로부터 54억원을 걷었다.
검찰에 따르면 작년 대선 때 임채주(林采柱) 이석희(李碩熙) 전임 청차장이 모아 한나라당에 전달한 선거자금은 모두 76억8천만원.
국세청을 통해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은 그만큼 세금부담을 덜었다. 나라살림에 써야할 세금을 탕감해 주는 대신 당시 여당의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징수하는 범죄를 징세기관의 고위간부가 저지른 것이다. 이전차장 등은 술회사에 약 2천억원의 주세납부를 3개월간 유예해주는 대가로 8억여원을 모금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청차장이 권력의 이익이나 개인적 영달을 좇아 징세권을 오용(誤用)하다 보면 하부 조직도 파행적으로 움직여 전체 국세행정이 문란해질 수밖에 없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청차장이 누군가의 부탁이나 외압을 받고 진행중인 세무조사를 중지하라고 지시한다면 이런 지시를 받은 국장이나 직원은 어차피 조사도 못할 바에야 ‘내 몫이나 챙기고 보자’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 큰 폐해는 세금 징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증폭된다는 점이다. 세정당국이 과세액을 고무줄처럼 줄였다 늘였다 하면 납세자들도 ‘세금은 힘없는 사람만 제대로 내는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들기 쉽다. 온갖 연줄과 수단을 동원해 세금을 덜 내려는 사회 분위기를 정치권력과 세정당국이 앞장서서 조장하는 셈이다.
▼권력의 심복〓전임 국세청장 9명의 출신지역은 당시 대통령과 동향인 경우가 많았다. 대구 경북 출신 4명, 부산 경남 출신 2명 등이다. 새 정부 들어서는 호남 충청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국세청장은 충남이고 요직인 차장과 조사국장은 전남출신이다.
국세청과 검찰은 권력자가 휘두르는 양날의 칼처럼 돼왔다. 기업들에 있어서는 국세청이 검찰보다 더 무서울 때가 많다. 검찰과 달리 범죄 혐의가 없는 개인이나 기업도 세무조사로 옭아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권력자는 국세청의 권능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는지 모른다.
국세청장의 재임기간은 평균 3년여로 다른 정부기관장에 비해 수명이 길었다. 정권과 관련되는 비밀스러운 일을 맡기다 보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앉혀놓고 간단히 바꾸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66년 재무부 사세국(司稅局)에서 분리돼 출범한 국세청이 권력의 친위부대로 나선 것은 2대 오정근(吳定根)청장 때부터였다. 오청장은 71년 대선 때 김대중(金大中)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목포의 삼학소주를 집중 조사했다. 이 회사는 결국 문을 닫았다.
91년 서영택(徐榮澤)청장은 대선에 정주영(鄭周永)회장이 출마하자 현대그룹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여 1천3백8억원을 추징했다. 이에 불복한 현대그룹은 소송을 걸어 96년 5월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사법부가 현대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와 세금추징에 무리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린 것.
김영삼(金泳三)정권 출범후 추경석(秋敬錫)청장은 박태준(朴泰俊)포항제철명예회장을 조사하기도 했다. 명목상으로는 포철에 대한 조사였지만 실제 타깃은 박명예회장이었다. 문민사정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추전청장은 그후 건설교통부장관으로 영전했다.
<백우진기자>woo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