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물 임산물 등 9개 품목에 대한 이른바 ‘분야별 조기 자유화(EVSL)’문제 때문이었다. 일본은 국내 어민과 농민들의 반발에 밀려 수산물과 임산물의 조기자유화에 반대, 대다수 APEC 회원국으로부터 시종 비난을 받았고 EVSL 문제는 결국 세계무역기구(WTO)로 넘겨졌다.
일본에 비해 중국은 위안(元)화를 평가 절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거듭 확인했고 한국은 일본 못지 않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EVSL을 적극 지지함으로써 회원국들로 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본은 APEC의 자발성의 원칙을 들어 EVSL을 유보시켰다. APEC는 강제성이 있는 우루과이라운드(UR)나 WTO와 달리 회원국들의 자발성에 기초한 협의체이기 때문에 결정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것.
APEC의 자발성 원칙은 이번 회의에서 APEC의 존립 자체에 대한 회의론까지 나올 정도로 문제가 됐지만 그같은 한계는 회원국들간에 경제력과 산업화의 수준차가 워낙 커 출범 때부터 예견돼 왔던 것.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의에서 △경제기술협력 △인적자원개발을 위한 기능개발센터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역내 감시체제 등에 대한 논의의 폭을 확대시켜 나간 점은 APEC의 효용성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해 줬다고 볼 수 있다.
홍순영(洪淳瑛)외교통상부장관도 회의가 끝난 후 “아태지역의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체의식을 강화해 나가는 것 자체가 APEC의 진정한 효용성”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홍장관과의 일문일답.
―EVSL 합의도출 실패로 APEC가 기로에 선 것 아닌가.
“APEC가 비록 경제협력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역 정상들이 매년 한자리에 모인다는 정치적 의미는 매우 크다. 정상들끼리의 신뢰구축은 물론 지역 공동체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 또 미국 일본 중국 정상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다자안보는 물론 한반도 평화에도 중요한 협의체다.”
―APEC차원의 금융위기 대처방안은….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의 내부 구조조정을 통한 내수진작과 이자율 낮추기를 통한 수요창출 등 두 가지 방안이 중점 논의될 것이다. 중국정부도 시장개방과 내수진작을 약속했다.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설립하자는 얘기도 있지만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이다.”
〈콸라룸푸르〓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