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에 한국에 투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한국말고도 지난 1년7개월 동안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 경제위기로 인해 기업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폭락한 나라가 수두룩하기 때문에 굳이 한국만 투자대상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잘 교육받은 노동력 ▼
이에 대한 답으로 정치적 안정, 정부의 정책방향과 추진력, 개혁 프로그램의 성과, 성숙한 제조업기반, 잘 갖춰진 인프라 등을 설명하면 대부분 수긍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모든 외국인이 예외없이 공감하는 것은 한국이 가지고 있는 ‘잘 교육받은 노동력’이란 부분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29개국 중 한국은 고등학교 학생의 졸업률이 90%이상으로 미국 캐나다의 70∼80%를 앞질렀고 대학진학률은 미국에 버금가는 상위권에 들어있다. 이것이 바로 ‘잘 교육받은 노동력’의 바탕임은 물론이다.
또 최근 외국투자 유치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국내의 로펌, 회계법인, 기업의 전문직이나 정부 관계자들을 보면 잘 교육받은 젊은 세대를 자주 발견한다. 해외에서 교육받은 교포 자녀들의 약진도 눈부시다.
이들 젊은이는 대부분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구사에 뛰어나고 전문지식의 기초도 탄탄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이 경쟁의 원리를 이해하고 시장의 법칙에 익숙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볼 때 이들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들은 매우 타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경우가 많다. 이상에 매달리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지나치게 따지는 경향이다. 또 서구식 지식 흡수에 급한 나머지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이나 아시아의 공통적 문화 유산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자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무지가 바로 그 사례이다.
물론 이런 단점은 이들 세대가 지닌 장점들에 비교하면 크게 문제될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망국적이라고 지탄받는 과외열풍, 입시지옥의 살인적 경쟁 같은 부작용이 지금도 여전하지만 이들 젊은이는 그래도 지난 수십년 우리나라 부모들의 유별나게 뜨거운 교육열이 키워낸 참으로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다만 개혁을 주장하는 전제로서 과거의 교육이 실패한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교육현장에 문제가 많다고 해서 교육 전체가 잘못되었다고 말 할 수는 없기 때문이며 그동안 이뤄온 성취를 굳이 외면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잘해온 것은 그대로 살리되 잘못된 것은 고쳐가고 경쟁의 폐해는 최소화하되 경쟁자체는 북돋워주는 균형 감각이 중요할 터이다.
지난날 6·25 전쟁중 어려운 고비를 겪었던 기성세대들에게는 각자 나름대로 인생의 큰 위기를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전쟁 또는 경제난, 가정파탄 등의 이유로 한때나마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쓰라린 경험이다. 다행히 이들중 많은 이들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친척 친지 교회 또는 정부의 배려로 학교에 복귀했고 그 결과 교육이라는 사다리를 통해 오늘의 성취를 이룩한 경우가 많다.
작년의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처해 있는 경제적 난국은 ‘6·25이후의 최대 난국’이라고 일컬어진다. 이 과정에서 1백50만명이 넘게 실직하고 수만개 기업의 도산과 더불어 상당수의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 난국극복 열쇠는 사람 ▼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을 한사람이라도 더 찾아내 배움의 대열에 다시 합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야말로 정부와 사회 전체가 함께 나서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근원적인 해결은 우리경제 전체가 좋아져야 하겠지만 더 늦기 전에 우리의 가장 소중한 미래의 자원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도 못지않게 긴요하다고 믿는다. 난국극복의 열쇠도 결국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른 새벽 동트기도 전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서 배움터로 향하는 우리의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의 뒷모습에서 IMF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바라볼 수 있는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한다.
현홍주(전주미대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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