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구조조정 내용]「선단식 경영체제」막내린다

  • 입력 1998년 12월 7일 06시 55분


고속성장의 중심축으로서 40여년동안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재벌체제의 종막(終幕)이 임박했다.

7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정재계 간담회를 계기로 현대 삼성 등 대재벌 경영의 폐해를 상징해온 이른바 선단식(船團式)경영체제의 종언이 정식으로 천명되고 기존 중복과잉 사업부문의 정리계획도 확정된다.

청와대 간담회에서 다룰 의제는 △김대통령과 5대그룹간 재벌개혁 5개항 이행사항 점검 △7개업종 빅딜 추진계획 확정 △그룹별 구조조정계획 등 크게 세가지.

정부와 재계는 청와대회동 전까지 완벽한 합의를 이룬다는 대전제에 따라 각자 구상한 합의문 초안을 교환, 정부―재계―채권단간 막판 ‘삼각조율’을 벌여 재벌개혁 청사진을 만들어냈다. 다만 주력업종 재편 문제 등을 놓고 재계가 적잖은 이견을 내보여 6일 오후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이 김우중(金宇中)전경련회장 및 5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과 막판 담판을 벌이는 등 난항을 겪기도 했다.

▼한국형 재벌체제가 사라진다〓정부 재벌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대마불사(大馬不死)형 재벌체제는 해체하되 재벌 계열사들의 경쟁력은 높인다’는데 맞춰져 있다. 연초 김대통령 당선자와 5대그룹 총수간 5개 개혁합의안은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행동강령.

5개항중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지보해소 △재무구조 혁신 △지배주주책임강화 등 4개항은 큰 잡음없이 추진중이다. 경영투명성을 높일 결합재무제표 작성기준이 마련돼 2000년 7월 시행되고 2000년 3월 상호지보 완전해소 일정에 맞춰 올해 말까지 이업종(異業種)간 상호지보가 우선 해소된다. 우량계열사가 부실사를 먹여살렸던 재벌 관행이 사라지게 되는 셈.

더욱이 공정거래위원회가 한시적이나마 계좌추적권을 보유하게 돼 음성적인 자금지원은 불가능해진 것으로 재계는 관측한다.

부채비율 400%대의 위험한 재무구조를 끌고 왔던 5대그룹들도 외자유치 등으로 부채를 꾸준히 갚아나가 연말 300%대, 내년쯤에는 200%대로 차입 의존도를 줄일 방침. 3,4%대의 개인 지분을 근거로 전횡을 일삼던 총수들은 △지배주주의 이사등재 △비서실 해체 △2000년 집단소송제 도입 △경영실패시 대주주 퇴진 등의 원칙이 도입되면서 비등해진 소액주주 권한에 입지가 급속히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폭적인 계열사 축소 및 사업부 분사 등으로 외형이 정리되면 기존의 재벌형체는 수년내 거의 사라지게 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슈퍼빅딜’과 소그룹내 통합으로 ‘몸통’줄인다〓5개 합의사항중 가장 지지부진했던 ‘핵심사업 위주의 사업구조조정’은 그룹간 막판 빅딜로 물꼬를 텄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간 슈퍼빅딜이 대표적 케이스.

두 그룹은 자동차―전자사업의 교환방침에는 합의했으나 등가(等價)를 보장할 부수적인 거래조건에 합의하지 못해 슈퍼빅딜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주저해왔다. 재계 소식통은 “양 그룹이 △삼성차 부채를 분담하거나 △인수후 대우자동차 부채의 출자전환 △대우통신의 컴퓨터사업부문 병행매각 등 여러안을 검토중”이라며 “합의문에는 원칙적인 입장만 밝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통합협상에도 빅딜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현대 LG 두 그룹이 실사기관인 미 컨설팅업체 ADL과 아직 정식 계약도 체결하지 못해 당초 약속한 ‘24일 경영주체 선정’이 무리라는 지적 탓이다.

5대그룹은 이와 함께 주채권은행에 3∼5개의 주력업종을 제시, 소그룹별 통합작업을 가속화할 예정. 37∼63개까지 거느렸던 계열사는 우량 15∼25개 정도로 대거 줄어든다. 재계는 “지급보증 해소가 용이하게 무역 건설 유통 등을 한 업종(서비스)으로 분류해줄 것”을 요청, 정부측의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부채비율이 높아 일찌감치 빅딜대상이 된 항공기 철도차량 유화 등은 이미 ‘계열분리→독립법인화’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 세부절차가 진행중. 재계는 6일 이같은 비주력업종 빅딜안을 놓고 정부 채권단에 대해 ‘선 은행출자후 외자유치’를 강력히 요청, 채권단의 동의를 받았다고 전경련 관계자는 전했다.

▼한국의 간판산업 ‘이원화체제’로 재편된다〓사업교환과 부실사 퇴출이 가시화하면 국내 산업계의 복수 경쟁체제가 급격히 허물어질 전망.

20여년 동안 3사체제를 유지해온 자동차가 현대―대우의 구도로 바뀌고 반도체도 삼성―LG(혹은 현대)체제가 들어선다. 3사가 치열한 내수시장 쟁탈전을 벌였던 가전부문도 삼성 LG 양자구도로 압축된다.

〈박래정·박현진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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