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구조조정 합의/정재계 간담회 대화록]

  • 입력 1998년 12월 8일 07시 54분


5대 재벌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7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재계 정부 금융기관 정책간담회는 오후4시반부터 6시40분까지 2시간10분 동안 진지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박지원(朴智元)청와대공보수석은 “재계나 정부나 금융기관이나 서로 허심탄회하게 물을 것은 묻고 밝힐 것은 밝혔다”며 “재계도 매우 협력적이었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다음은 박수석이 전한 이날 대화록.

▼김대통령(모두발언)〓오늘 국가의 장래에 막중한 영향을 주는 중요한 모임을 갖게 됐다. 대통령 당선 후 재계 여러분과 5가지를 합의했다. 그동안 여러분의 협력으로 많은 진전과 성과를 거둔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주력기업중심 경영체제를 갖추기로 한 것은 부족한 점이 있어 이 자리를 만들었다. 재계의 자구노력이 충분치 않은 게 사실이다. 국내외에서 비판이 많고 국제신인도에도 문제를 가져오고 있다.

중소기업은 2만개가 문을 닫았고 6대에서 30대까지의 그룹 중 절반이 해체됐다. 5대 그룹은 핵심기업 중심으로 사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오직 목적은 하나, 경쟁력있는 기업을 만드는 일이다. 5대 그룹의 금융차입이 전체의 30%나 돼 기업과 금융 양쪽 모두의 부실을 조성하고 있다. 그것이 아직도 우리의 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으로 평가되는 원인 중 하나다.

[온국민-세계가 주목]

5대 그룹이 국난극복의 선두에 서주어야 한다. 이제는 선단식 경영을 끝낼 때가 됐다. 세계적으로 우리만 유별난 방식을 취해왔는데 끝내야 한다. 계열사간 내부거래도 더이상 해선 안된다. 그런식은 잘 되는 기업도 잘 되지 못하게 하고 잘될 수 없는 기업도 퇴출되지 않고 살아남게 만들어 국민에게 부담을 안겨준다.

투명한 기업이 돼야 한다. 기업도 합법적인 일만 해야 한다.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나 더 달라져야 한다. 기업돈을 빼돌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경영능력이나 적성이 없는 사람이 경영을 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외국에서는 아득한 옛날 얘기다. 이 점에 대해 상당한 반성과 시정이 있어야 한다.

오늘 증시가 500선을 넘었고 5대 그룹의 다수 종목이 상한가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렇게 국민이 오늘 간담회를 기대하고 있다. 5대 그룹의 구조조정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지켜보고 있다. 5대 그룹은 경제성장의 공도 크지만 6·25이후 최대국난에 대한 책임도 있는 만큼 과감한 결심을 가지고 다시 경제를 살리는데 앞장서야 한다.

여러분은 이미 우리 경제에 지울 수 없는 이름을 남기고 있다. 역사에 남을 것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나라를 살리는 중추로서 후세에 명예를 남기고 기업의 발전에도 도움을 줘야 한다. 정부는 결단코 어떤 기업을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개혁에 힘쓰지 않고 국제경쟁에서 이겨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국민을 위해 묵과할 수 없다.

64조원에 이르는 은행의 부실대출이 결국 국민의 부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 국민과 세계가 이 자리를 주목하고 있다. 과연 그러면 그렇지 이제 정말 희망이 있다는 기쁨과 용기를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자리가 돼야 한다. 김우중(金宇中)회장이 건강도 좋지 않은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준데 대해 감사한다.

[국민들 자신감 회복]

▼김우중전경련회장〓국제통화기금(IMF)체제 1년동안 대통령께서 심혈을 기울여 많은 가시적 성과를 거둠으로써 국민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대우는 수출확대와 구조조정노력을 통해 올해 1백4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에 기여했다. 또 2000년대를 대비한 구조조정에 상당한 진전이 있다(박지원수석은 ‘상세한 내용은 기업비밀’이라며 발표를 유보).

▼이건희(李健熙)삼성회장〓대통령께서 중국 및 싱가포르와의 정상외교 석상에서 삼성과 현대를 직접 거명하면서 세일즈외교를 펼쳐주신 데 대해 감사한다. 삼성은 99년말까지 채권은행단과 약속한 내용을 지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분사는 물론 계열사 대폭 축소 등을 통해 모든 구조개혁을 99년말까지 완료할 것이다. 93년부터 주장해온 대로 ‘모든 것을 다 바꾼다’는 각오로 과감히 개혁을 추진하겠다.

▼정몽헌(鄭夢憲)현대공동회장〓경제난 타개를 위해서도 5대 재벌은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현대는 사장단 폐지뿐만 아니라 투명성 제고를 위해 사외이사와 사외감사 제도를 과감히 도입하고 결합재무제표 도입을 위한 만반의 준비도 하고 있다. 재산매각 등 자구노력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자동차계열을 통폐합해 2,3년내 현대계열에서 분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분야 구조조정을 위한 기업 신설도 합의대로 지켜나갈 것이다.

▼구본무(具本茂)LG회장〓건실하고 강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개혁을 가속화하겠다. 투명하고 책임있는 경영체제 확립은 물론 회장실을 폐지하고 불공정거래를 하지 않도록 회사차원에서 제도적인 뒷받침을 할 것이다. 법인단위의 기업가치를 유지하면서 세계적인 경쟁구조를 갖추기 위해 비주력업종을 과감히 정리할 것이다. 99년까지 상호보증채무를 완전히 정리할 것이며 부채비율도 2002년까지 100%미만을 유지하겠다. 반도체 빅딜을 위해 경영주체가 원만히 합의되도록 노력하겠다.

▼손길승(孫吉丞)SK회장〓SK는 95년부터 노력해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분야 매출액이 80%를 차지하고 있다. 25억∼32억달러의 외자유치 계획도 갖고 있다. 구체적 내용은 기업비밀이므로 금감위원장을 통해 대통령께 보고하겠다. 외국투자자의 지분참여를 통해 핵심사업에도 외국의 유수업체를 유치, 공동참여토록 할 것이다. 이 경우 외국업체가 계열분리를 원하고 있으므로 정부가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 SK는 브랜드만 공유하고 각사가 독자경영을 하도록 할 것이다. 소액주주의 추천을 받아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고 비핵심사업을 과감히 정리할 것이다. SK증권이 물의를 빚은데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미국의 JP모건사와 정상화 합의를 했음을 보고한다.

▼유시열(柳時烈)제일은행장〓금융권은 채무탕감이나 출자전환 등 과거 기업구조조정에 피동적이고 보수적으로 임했으나 이제 경영이 부실하면 은행도 퇴출되는 시장논리가 현실화되면서 자세가 크게 변했다.

▼배찬병(裴贊柄)상업은행장〓기업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한 뒤 부채비율 감축 등 구조조정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할 것이다. 해당기업의 소생여부 확인과 대출금 회수 등 채권은행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

[지식화-정보화 노력을]

▼박태준(朴泰俊)자민련총재〓국가적 현안인 구조조정을 위해 정치권의 분위기 조성이 미흡해 죄송하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몇가지 법안을 정리해 법적 뒷받침을 완결하겠다. 금융기관과 기업이 적극 노력하고 있는 점은 인정하지만 구조조정이 생각보다 지연된 것은 유감이다. IMF체제1년동안30대기업의 부채비율이 100∼150% 더 늘고 금융기관이 중소기업을 외면한 채 대기업 중심으로 통화를 활용해 (대기업의) 부채비율을 줄이지 않았다.

일부 대기업은 백화점을 매입하는 등 사업을 확장해 구조조정이 지연됐다. 기업 스스로의 책임이지만 직간접적으로 국내에 영향이 있고 신인도에도 영향이 있으니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지식정보산업을 지향하고 있는 이때 제조업도 지식화와 정보화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금융구조조정은 순조로웠으나 창구경색 등으로 여신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 흑자도산하는 경우도 생겼다. 은행은 중소기업에 대한 조사 및 심사분석을 강화하고 방문을 통해 대출여부를 결정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조세형(趙世衡)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흡족하지는 못하지만 부분적으로 구조개혁과 채무비율축소 등 합의에 도달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번 합의 이행에 지장이 없도록 정치권에서 법적 뒷받침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합의에 도달한 것 못지 않게 앞으로도 합의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1월13일 대통령께서 5대 그룹과 5개항을 합의했으나 일말의 불안과 걱정이 있었다. 국가차원에서 바라보느냐, 기업차원에서 바라보느냐 하는 시각이 문제다. IMF체제 하에서는 모든 문제를 국가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금융위기 다신 없도록]

▼이헌재(李憲宰)금감위원장〓구조조정의 구체적 내용은 채권은행에 제출돼 있고 현재 맞지 않는 부분은 조정중이다(전문 5개항과 20개 실천사항을 낭독).

▼손병두(孫炳斗)전경련부회장〓석유화학 항공기 철도차량 부문은 합의대로 이행되기 바란다. 이업종간 지급보증에 대한 가산금리에 문제는 없나. 또 외자유치 동시추진과 사전 출자전환 문제에 대한 정부 입장은 무엇인가.

▼이위원장〓이업종간 지급보증에 대한 가산금리에 문제는 없다. 채권은행단과 합의하여 가시적 전제가 있을 경우에 출자전환을 검토하겠다.

▼손부회장〓퇴출기업 부채를 모기업이 부담할 때 소액주주의 반발이 우려된다. 기업의 기밀유지가 필요하다.

▼이위원장〓지나치게 기밀유지를 하면 국민이 무엇하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채권은행에서 (기업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최대한 비밀유지를 지켜나갈 것이다.

▼김대통령 맺음말〓오늘 재계 채권은행단 정부관계자가 모여서 중대합의를 해준데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개혁에 대한 우리의 분명한 의지가 발표되면 국민은 모든 것을 신뢰하고 앞날에 희망을 가질 것이다. 개혁이 잘될까 반신반의하던 국제사회 분위기도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이번에 합의한 20개 항목의 경제개혁은 경쟁력제고를 위한 결정적 조건이 될 것이다.

내년에 개혁이 잘되면 우리는 수십년간의 고질적 문제를 세계수준으로 개혁하게 될 것이고 2000년에 선진국들과 어깨를 겨루는 힘찬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은 지모를 다해 개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채권자인 은행도 기업을 감독하고 격려해서 성실한 이행을 하게 하고 채권보전이 원만히 되도록 해야 한다.

두번 다시 금융기관이 채권자로서의 권리 의무를 포기해서 금융위기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이런 일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주식 한 주 없는 정부가 은행을 지배하지 않을 것이며 한보사태처럼 대출을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은행은 자립적 경영을 해야 하고 스스로 위험부담을 판단한 뒤 대출함으로써 발전해야 한다. 정부가 은행에 대해 거는 기대는 크다.

IMF체제 1년이 지나면서 다행히 전세계가 입을 가지런히해 우리의 성과를 평가하고 있다.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한국이 모범국가로 꼽혀 연설까지 했다. 대합의를 이룩해 재계 금융계 정부가 힘을 합쳐 나라를 살려 나가자. 여러분의 노고와 결단을 치하하면서 더욱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한다.

〈임채청기자〉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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